6 금두수(琴斗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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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1963년 2월 23일)
독행상(篤行賞)
의성군(義城郡) 의성읍(義城邑) 후죽동(帿竹洞) 618-5
효부(孝婦) 금두수(琴斗守) 36세

철도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6·25동란 때 중앙선 철로를 지키다 적 포탄에 맞아 숨졌다. 

결혼생활 6년 만에 청춘 과부가 된 금(琴)씨는 두 자녀와 노시부(老媤父)의 생계를 위해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야 했다. 

남편이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마련한 얼마 되지 않는 전답을 여자의 몸으로 직접 경작하기도 하고 농한기에는 삯 바느질, 품팔이 일 등 어려운 일을 서슴없이 해내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60의 시부(媤父)는 시모(媤母)를 잃고 실의에 빠져 술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금(琴)씨는 고난의 생활 속에서도 시부(媤父)의 보살핌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시부(媤父)는 언제나 며느리 공양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듯 쓸쓸해 했다. 금(琴)씨가 친척들과 주민들에게 부탁해 계시모(繼시모(媤母))를 맞아 시부(媤父)를 재혼시켜준 것은 외로워하는 시부(媤父)를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한 효심(孝心) 때문이었다. 재혼 5년 만에 시부(媤父)는 돌아가셨으나 금(琴)씨는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전 재산인 전답을 계시모(繼媤母)에게 선뜻 넘겨주었다. 현재 금(琴)씨는 조그만 구멍가게를 열어 5명의 자녀를 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