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김영자(金永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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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1999년 4월 27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문경시 산북면
효부(孝婦) 김영자(金永子) 35세

김영자(金永子) 여인은 88년 6월 문경시 산북면 약서리의 채병기 씨와 결혼하였다.

부부가 합심하여 5형제 중 막내이면서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근면성실(勤勉誠實)하게 살고 있던 중 94년 시모께서 중풍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다. 

김(金) 여사 부부는 빈농(貧農)으로 넉넉지는 못하였으나 각처의 병·의원과 민간요법으로 좋다는 약을 구하여 지극히 간병하는 한편 시모께서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여 드리면서 보살폈으나 효험(效驗)도 없이 병세는 악화만 되어갔다.

24시간을 누워만 있게 되자 욕창이 생겨 잠시도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자주 돌려 눕히고 식사도 떠서 입에 넣어 드리며 용변도 일일이 처리해 드려야 하는 지경이었다.

남편과 교대로 시모님을 돌보고 간병을 하니 그 고통(苦痛)이 심하였으나 항상 웃는 얼굴로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간병에 임했다. 그러나 3년이 넘는 정성의 보람도 헛되어 97년 시모께서는 운명하고 말았다.

정중하게 상(喪)을 치르고, 홀로 계시는 시부님의 여생(餘生)을 즐겁게 해 드리기에 노력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시부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드리기에 정성을 쏟아 모든 일을 행함에 반드시 고하고 자상하게 아뢰고 하여 시부님을 즐겁게 해 드리고 있다.

김(金) 여인은 시부님께 효(孝)를 함은 물론 마을 노인분들에게도 성심껏 공경(恭敬)을 하고 있어 동리 젊은 부인들에게 모범(模範)이 되고 있다.

자기 한 몸만 편하려고 노부모를 갖다 버리는 패륜(悖倫)이 판을 치는 요즈음 세태에 김(金) 여인이야말로 보기 드문 효부이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젊은 여성들의 귀감이 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