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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지효(反哺之孝)의 고사와 전설이 전해져 오며 까마귀 형상을 한 산이 소재하고 있어 오설이라 불리우는 효(孝)의 고장인 구지면 오설리에서 농부 방차혁(方次赫)(57세)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방경조(方慶祚) 청년이 중학교 1학년인 1985년 1월에 모친이 신장염으로 자리에 눕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그해 10월에는 부친이 가을걷이 작업 중 볏단을 나르다 경운기 위에서 논바닥으로 낙상(落傷)하여 크게 다쳐 척추신경마비로 전신불구(全身不具)가 되었다.
졸지에 부모가 자리에 누웠으나 어린 방(方) 군은 실망하지 않고 입원치료를 위해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농토 1,800평을 처분하여 지극정성으로 간병하였다.
그러나 간병한 보람도 없이 끝내 완쾌되지 못한 채 퇴원, 좁은 방에서 침대생활을 하게 되었다.
1987년 신장염에다 남편의 중상(重傷)으로 마음 고생을 하시던 모친이 돌아가시자 어린 소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실질적인 소년가장이 되어 어린 두 동생을 돌보아야 했고 부친의 간병, 식사수발, 대·소변 처리 등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부친의 몸은 중환자이나 정신만은 온전하여 모든 일들을 항상 의논하고, 그 뜻을 받들고 행함은 물론, 좁은 방이지만 TV와 라디오, 전화기도 설치하여 불편을 덜어 드리고, 겨울철에는 전기히터로 방안 온도를 조절케 하고, 하루 수 차례씩 팔,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서 부친의 몸과 마음을 달래 드리고 있다.
한편 농사에도 힘써 현재는 한우(韓牛)도 40마리를 사육하고 농토도 2,500평에 이르는 중종이 되었으며, 두 동생도 학업을 마치게 하여 훌륭한 직장에서 사회에 봉사(奉仕)하고 오빠의 본을 받아 효도를 하고 있다 하니, 그의 효행에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있어 부친의 회춘도 멀지 않아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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