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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한씨(兪炳漢氏)의 투철한 경로사상(敬老思想)은 마을의 삼척동자(三尺童子)들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노인(老人)들에 대한 그의 지극(至極)한 공경심(恭敬心)은 세인(世人)의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
유씨(兪氏)는 지난 1977년(年)부터 1980년(年)까지 4년간(年間) 월성군(月城郡) 4H연합회장직(聯合會長職)을 맡은 일이 있었는데, 이때 그는 19개(個) 리동(里洞)의 경로회(敬老會)를 틈틈히 방문(訪問)하여 술과 담배를 대접(待接)하기도 했고, 또한 1981년(年) 5월(月)에는 관광(觀光)버스를 대절하여 산내면(山內面) 내일리(乃日里) 노인(老人) 36명(名)으로 하여금 즐거운 효도관광(孝道觀光)의 기쁨을 안겨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82년(年) 5월(月)에도 월성군(月城郡) 산내면(山內面) 노인회원(老人會員) 45명(名)에게 역시 사비(私費) 19만여(萬餘)원을 들여 효도관광(孝道觀光)을 시켜 드렸다.
이와 같이 그는 두 차례에 걸쳐 노인(老人)들에게 효도관광(孝道觀光)을 기쁨을 안겨 주었는데, 어느 노인(老人)한 분은 감격(感激)에 넘쳐 이렇게 말했다.
"그 청년(靑年)의 정성(精誠)이 어찌나 지극(至極)한지 너무나 고마워 마음 속으로 울었다. 내 생전(生前)에 이런 기회(機會)가 아니면 청도군(淸道郡) 운문사(雲門寺)며 항도(港都) 부산(釜山)등을 구경(求景)할 수 있었겠는가? 내 자식(子息)이 못다한 효도(孝道)를 그 청년(靑年)이 한 것 같아 마음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비단 그 노인(老人) 혼자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찬사(讚辭)는 마을 노인(老人) 모두의 한결같은 감탄사(感歎詞)였다.
더우기 유씨(兪氏)는 12년간(年間)이나 속병(病)을 앓고 있는 노부(老父)님이 계심에도 불구(不拘)하고 마을 노인(老人)들을 친부(親父) 이상(以上)으로 극진히 공경(恭敬)하고 있는 것이다.
고질적(痼疾的)인 속병(病)으로 신음중(呻吟中)인 노부(老父)님을 위해 그는 매일(每日)같이 날품팔이를 해가며 병(病)에 좋다는 약(藥)을 다 지어다 드렸는가 하면, 하루가 멀다할 만큼 들과 산(山)을 헤매면서 속병(病)에 좋다는 약초(藥草)와 나무뿌리를 채취(採取)하여 복용(服用)토록 하는 등 지성(至誠)으로 구환(救患)을 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밤을 새우면서 간호(看護)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속병(病)에 좋다는 날짐승을 잡기 위해 산(山)에서 꼬박 하루 해를 넘긴 일도 있었다.
그의 지극(至極)한 효성(孝誠)으로 마침내 노부(老父)님의 건강(健康)이 회복(回復)되어, 지금에 와서는 정상적(正常的)인 활동(活動)을 하게 됐다.
극진한 효행(孝行)으로 노인회(老人會)로부터 표창장(表彰狀)을 받기도 한 유씨(兪氏)는, 경로사상고취(敬老思想鼓吹)에 남다른 열의(熱意)를 지니고 있었다.
"노인(老人)들은 역사(歷史)의 증인(證人)인 동시(同時)에 오늘을 살아가는 이 나라의 거목(巨木)들입니다. 그들이 존재(存在)하지 않았던들 오늘이 있을 수 없고, 그들이 존재(存在)하지 않으면 내일(來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歷史)의 창조자(創造者)인 노인(老人)들을 내 어버이처럼 공경(恭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유씨(兪氏)는, 오늘도 담배와 술을 사들고 마을 노인회(老人會)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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