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보티미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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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회(2019년 4월 18일)
보화상(補化賞) 본상(本賞)
경북 영천시 자양면
효부(孝婦) 보티미디엔 32세

베트남 호찌민 인근 껀터시톳논현쭝흥명에서 태어나고 자란 보티미디엔 씨는 2006년 김장호 씨와의 국제결혼으로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다. 

결혼 당시 노총각이었던 남편은 대구에서 간판 제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늦은 나이에도 좋은 배필을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던 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로 베트남 아내를 찾게 되었고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혼 후 대구에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귀농해 부모님과 함께 사과 농사를 시작한 남편을 따라 보티미디엔 씨도 영천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곳에서 김수정 양과 김수희 양을 낳았다. 

서툰 한국말과 한국 시골 환경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늘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특히 연세가 많은 시부모님을 누구보다 극진히 모셨다. 

며느리의 그런 모습에 시아버지는 늘 보티미디엔 씨를 안쓰러워하며 묵묵히 그녀를 응원해 주어 그녀에겐 무엇보다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던 중 6.25 참전 상이용사로 온갖 고생을 다 하셨던 시아버지가 2008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시는 우환이 일어났다. 심지어 2011년에는 신장 수술까지 받게 된 시아버지는 거동이 힘들어 지시게 되셨는데, 어린 외국인 며느리 보티미디엔 씨는 그런 시아버지의 옆에서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하였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주위에도 알려져 2018년 12월 지역 단위 농협에서 친정인 베트남에 갈 수 있는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결혼 후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에 갈 수 있게 된 보티미디엔 씨는 친정 부모님과 친척 일가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지만, 와병 중이신 시아버지 걱정에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이런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남편은 아내와 장인, 장모님의 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고향행을 권유했고, 드디어 보티미디엔 씨는 한 달간의 일정으로, 베트남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친정에 머물면서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시아버님의 안부를 물었는데, 친정에 머문 지 열흘도 안 되던 어느 날 시아버지의 병세가 갑자기 더 나빠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한걸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시아버지는 친정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시아버지는 올해 2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지금은 시어머니 역시 다리가 불편하고 근래에는 치매 증상까지 보이고 있어 그녀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하지만, 보티미디엔 씨는 시어머니도 정성껏 보살피며 씩씩하게 집안일을 해 내고 있다. 

올해는 큰 딸 수정양이 집과 가까운 자천 초등학교 보현분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되어 더 기쁘고 행복하다는 보티미디엔 씨. 

그녀는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 봉양과 남편의 농사일을 거드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길고 고되지만,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주변 이웃에게 좋은 기운을 전하고 있다. 

말도 안 통하는 머나먼 이국땅에 시집와서 한국인 며느리도 하기 힘든 오랜 시부모의 병수발을 하며, 예쁘게 자녀들을 키우는 보티미디엔 씨의 모습은 대견스러움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