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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와룡면 가류리 823번지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무영 씨는 어릴 적부터 성품이 남달랐다.
안동댐 수몰 이후 산비탈과 수변 농지를 개간해서 근근이 농사를 지으며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늘 안쓰러웠던 그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학업에 매달렸다.
그 결과, 부모님의 기대대로 중앙대 의대에 진학했고, 4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 장학생으로 낙제 없이 졸업했다. 힘든 의대 공부 중에도 방학이면 틈틈이 집에 내려와 부모님을 도왔던 박무영 씨는 공중보건의 봉직 시에도 언제나 부모님의 곁에서 손발이 되어드렸다.
남편의 이런 모습에 반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아내 역시 요즘 보기 드문 효부로, 결혼 이후 주말이면 다른 일을 제쳐두고 반드시 부부가 함께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전공의를 마친 후, 대학병원에 남으라는 제의를 받았던 박무영 씨는 부모님 가까이에서 효를 다하고 싶은 마음에 좋은 제의를 거절하고 고향인 안동에 내려와 내과의원을 개업했다.
그러던 중 2002년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홀로 남은 어머니가 걱정돼 막내인 본인이 모시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13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의 밥상을 직접 챙기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5번의 수술을 받았던 어머니는 5년 전부터 노환과 치매로 대소변 조절이 잘되지 않아 가족들을 걱정시켰다.
고생하는 아내를 대신해 어머니의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기 시작한 박무영 씨는 혹시라도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실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 똥은 구수하기만 하다.”며 안심시켜 드리기도 했다.
또한, 매일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간식을 챙겨드리며 어머니의 건강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노모는 뇌경색으로 입원 요양 중이지만, 박무영 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 퇴근 이후에도 어머니를 곁에서 보살피고 있으며, 치아가 좋지 않으면 맛있는 음식을 잘 먹지 못해 병이 악화될까 걱정스러워 매 식사 후엔 틀니 정리와 혀를 깨끗이 닦아드리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어머님이 살아계시고, 이렇게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감사할 따름이라 말하는 박무영 씨.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며 할 수만 있다면 함께 순장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행히 막내아들의 지극한 효성 덕분인지 현재 어머니의 뇌경색은 빠른 회복 중이다.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를 집으로 모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박무영 씨.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이웃들은 하늘이 내려 준 효자라며 칭찬이 자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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