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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男) 1녀(女)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공군(孔君)은, 평소 근면성실(勤勉誠實)하며, 책임감(責任感)이 강强)하고 특히 부모(父母)에 대한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여 인근주민(隣近住民)들로부터 항상 칭찬(稱讚)을 받아 왔다.
1977년(年)에 중학교(中學校)를 졸업(卒業)한 공군(孔君)은, 가정형편상(家庭形便上) 진학(進學)을 포기하고 노부모(老父母)님을 모시고 농사(農事)일을 해야만 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형(兄)들은 모두 고향(故鄕)을 떠나 타지(他地)에서 생활(生活)하고 있는 탓으로, 부득이 막내인 그가 장남(長男) 구실을 하면서 가사(家事)를 돌봐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탈곡작업(脫穀作業)을 하던 그의 부친(父親)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 원인(原因)이 되어서 수족(手足)을 못쓰게 됐고 마침내 중풍(中風)이란 중병(重病)까지 얻게 되었다.
다음 날부터 부친(父親)을 손수레에 태우고 병원(病院)과 약국(藥局) 등을 돌아다니면서 백방(百方)으로 구료(救療)해 보았지만 병세(病勢)는 더욱 악화(惡化)되어갈 뿐이었고 가산(家産)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비참(悲慘)해져 갔다.
형(兄)들은 모두 객지(客地)에서 생업(生業)에 종사(從事)하고 있으며, 1년(年)에 고향(故鄕)에 오는 것이 몇 번 되지 않기 때문에 공군(孔君)의 책임(責任)은 더욱 무거워져만 갔던 것이다.
대소변(大小便)을 받아내는 일에서부터 빨래와 목욕(沐浴)등 여자(女子)도 감내(堪耐)하기 어려운 일들을, 매일(每日)같이 되풀이하면서 부친(父親)을 극진히 봉양(奉養)하였다.
지난 해 7월부터는 방위근무(防衛勤務)의 명(命)을 받고, 충실(忠實)히 복무(服務)하면서 부친(父親)의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는데, 어떤 때는 꼬박 밤을 새워 대소변(大小便)을 받아내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등, 지극(至極)한 그의 효행(孝行)에 대하여 동민(洞民)들도 입을 모아 찬사(讚辭)를 보내고 있다.
어느 인근주민(隣近住民)들은 갸륵한 그의 효심(孝心)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稱讚)하면서 "환자(患者)를 손수레에 태우고 시내(市內) 곳곳을 다니면서, 거리 구경(求景)을 시키고 있는 그의 갸륵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며, 꼭 천사(天使)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錯覺)을 할 때가 있다."고 하였다.
극진(極盡)한 간호(看護)의 보람도 없이 병세(病勢)는 더욱 악화(惡化)되어갔지만, 그는 조금도 실망(失亡)하지 않고 중풍(中風)에 좋다는 약(藥)을 구(求)해 오는 등, 배전(倍前)의 정성(精誠)을 다하여 간호(看護)에 열중(熱中)하였다.
특히 병석(病席)의 무료(無聊)함을 달래 드리기 위해서 간혹 조촐한 음식(飮食)을 마련하여 동네 노인(老人)들을 자택(自宅)으로 모셔 오기도 했는데, 이와 같은 그의 지극한 정성(精誠)에 동네 노인(老人)들은 번거로움을 마다 않고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어느날, 하루는 노망기(老妄氣)를 부리면서 길을 헤매고 있는 노인(老人)을 집으로 모셔와 보살펴 드리는 등, 그의 경로심(敬老心) 또한 뛰어나 공군(孔君)은 동네에서 '효행 청년(孝行 靑年)'으로 통(通)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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