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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명(餘名)의 대가족(大家族)의 맏며느리가 된 이정자(李貞子) 여사(女史)는 그가 시집올 때 친정(親庭)으로부터 가지고 온 고귀(高貴)한 선물(膳物)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내(忍耐)'란 두 글자의 가훈이었다.
막상 시댁(媤宅)에 와 보니 그 집 가훈도 '인내(忍耐)'란 두 글자여서, 이여사(李女史)는 뭔가 모르게 상통(相通)되는 점(点)이 있어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였다.
이 때 시댁(媤宅)에서는 도정공장(道程工場)을 경영(經營)하고 있었던 탓으로 경제적(經濟的)인 어려움 없어, 가사(家事)를 돌보는 일에만 전심전력(全心全力)하였다. 그런던 중 도정공장(道程工場)의 기계취급(機械取扱) 부주의(不注意)로 그의 시부(媤父)님이 좌골신경통(坐骨神經痛)으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는 바람에, 급기야 가세(家勢)도 서산(西山)에 해가 저물어가듯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맏며느리된 도리(道理)로서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다음 날부터 시부(媤父)님 대신 남편(男便)을 도와 도정공장(道程工場)에서 힘겹게 일하는 한편, 높은 산(山)과 깊은 계곡(谿谷)을 헤매면서 시부(媤父)님의 병(病)에 좋다는 약초(藥草)를 캐어다가 손수 양탕관(藥湯罐)에 정성(精誠)들여 달여 드리는 등 나름대로의 효심(孝心)을 시부(媤父)님께 듬뿍 쏟았다.
“이여사(李女史)는 여자(女子)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중노동(重勞動)을 하면서 시간(時間) 틈틈이 간병(看病)하는 등, 정성(精誠)스러운 그의 효심(孝心)에 온 마을 사람들이 감동(感動)을 하고 있다. 신혼(新婚)의 단 꿈에 취(醉)해 있어야 할 그런 나이에, 온갖 궂은 일도 마다 않고 묵묵히 시부(媤父)님 시봉(侍奉)을 하고 있으니 세상(世上)에 이런 효부(孝婦)가 또 어디 있겠는가?"라는 인근(隣近住民)의 말 그대로, 이여사(李女史)는 결혼(結婚)초(初) 새색시의 몸으로 알뜰한 효심(孝心)을 다 바쳤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밤낮없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시모(媤母)님을 위해서도 그의 뜨거운 효심(孝心)은 넘쳤으니 이 얼마나 갸륵한 일이랴. 가계(家計)가 점점 어려운 지경(地境)에 이르자, 이여사(李女史)는 손에 닥치는 대로 품팔이를 하면서 가난과 싸워 이겨 나갔다. 특(特)히 이여사(李女史)는 이곳 저곳에서 5일(日)장날이 열릴 때마다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면서 시부모(媤父母)님께 좋다는 명약(名藥)이면 다 구(求)해다 복용(服用)케 하는 등 지극(至極)한 그의 효성(孝誠)은 놀랍기만 하였다.
그 자신(自身)도 가난이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처지(處地)이지만, 항상(恒常) 불우(不遇)한 이웃을 보면 찬밥 한끼라도 같이 나누어 먹는 따뜻한 인정(人情)의 소유자(所有者)이기도 했다.
부녀회(婦女會)에서도 열심(熱心)히 활약(活躍)하고 있는 그는 향토애(鄕土愛) 또한 대단하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말보다는 행동(行動)하는 지도자(指導者)가 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여사(李女史)는 오늘도 부녀회(婦女會)에서도 공동(共同)으로 채취(採取)한 나무를 판 돈으로 불우(不遇)한 이웃을 돕기 위하여 급(急)히 뛰어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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