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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子息)은 부모(父母)의 분신(分身)이요, 부모(父母)는 자식(子息)의 전신(前身)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재술(李再述) 여사(女史)는 5년전(年前) 병환(病患)으로 타계(他界)한 남편(男便)을 대신하여 시모(媤母)님을 극진히 봉양(奉養)하고 있는 보기 드문 효부(孝婦)이다.
5년전(年前) 남편(男便)이 지병(持病) 끝에 타계(他界)하던 날 노환(老患)으로 병석(病席)에 누워 있는 시모(媤母)님도 자식(子息)의 사망소식(死亡消息)을 접(接)한 후(後) 충격(衝擊)을 받고 그 날부터 사경(死境)을 헤매게 되었다.
며느리인 이여사(李女史)는 자신(自身)의 슬픔은 애써 누르면서 시모(媤母)님을 위로(慰勞)하기에 헌신적(獻身的)으로 보살피며, 극진한 간호(看護)로 생명(生命)만은 유지(維持)하게 되었다.
그러나 식물인간(植物人間)처럼 기동(起動)을 할 수 없게 됨에 대소변(大小便)은 물론, 미음까지도 일일이 떠먹여 드리는 어려움이 뒤따랐지만, 그는 그런 고역(苦役)을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보살피는 한편, 시간(時間) 틈틈이 고대소설(古代小說)과 야담(野談) 등으로 메마른 정서(情緖)의 갈증(渴症)을 메워 드리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하루에도 몇 차례 걸쳐 간식(間食)을 마련해 드리기도 했는데, 그의 뒷바라지가 오죽 정성(精誠)스러웠으면 동리(洞里) 아낙네들이 이런 말까지 했을까.
“효도(孝道)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이여사(李女史)가 쓰러지겠수. 자신(自身)의 몸을 생각하면서 일하도록 해요. 사람의 몸이 쇳덩인 줄 아세요? 나 죽으면 효도(孝道) 길도 막혀 버린다는 걸 왜 모르실까?” 하는 인근주민(隣近住民)의 충고(忠告)도 아랑곳 않고 이여사(李女史)는 몸을 아끼지 않고 시모(媤母)님 구환(救患)에만 전념(專念)했다.
시모(媤母)님 여생(餘生)에 한(恨)을 남긴다는 것은 자식(子息)된 도리(道理)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여사(李女史)는,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시모(媤母)님이 잠들 때까지 팔다리를 주물러 드렸고, 시모(媤母)님이 먼저 잠드신 후(後)에야 비로소 자신(自身)도 잠자리에 들 정도(程度)로 그의 효심(孝心)은 깊었는데, 때로는 시모(媤母)님이 횡설수설(橫說竪說)하면서 밤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울 때는 이여사(李女史)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면서 시모(媤母)님의 외로움을 달래 드리곤 하였다.
또한 어떤 때는 기분(氣分) 내키는대로 이부자리에 방뇨(放尿)하는 일도 허다(許多)했지만, 그럴때마다 이여사(李女史)는
“어머이예. 오늘따라 오줌똥 냄새가 와 이리 구수항교? 강아지들이 이 냄새를 맡으면 결사적(決死的)으로 달려 들여서 먹겠심니더, 이거 잘 보관해 뒀다가 강아지에게 톡톡히 돈을 받고 팔아먹읍시더.”
이와 같은 농담(弄 談)으로 웃기면서 시모(媤母)님의 괴로움을 달래 드리곤 했다.
비단 그는 시모(媤母)님 봉양(奉養)뿐만 아니라, 6남매(男妹)의 어머니로서 자식(子息)들을 티없이 맑고 곱게 키워나가고 있는데, 자식(子息)들도 한결같이 어머니의 효심(孝心)을 본받아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다는 인근주민(隣近住民)들의 공통(共通)된 칭찬이었다.
“충효정신(忠孝精神)은 우리 조상(祖上)들이 오랜 세월(歲月)을 거쳐 피와 땀으로 갈고 닦아 우리에게 물려 준 자산(資産)이며 보배이다.”라고 말하는 이여사(李女史)는, 자녀(子女)들에게 '충효(忠孝)'라는 두 글자를 가훈(家訓)으로 남겨 주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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