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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男便)의 무직(無職)으로 실질적(實質的)인 일골 식구(食口)의 가장(家長)노릇을 하고 있는 최정자(崔貞子) 여사(女史)는 초등학교(國民學校) 교사(敎師)로서 바쁜 직장생활(職場生活) 중에도 7명(名)의 생계(生計)를 이어가면서 정성(精誠)껏 시부모(媤父母)님을 알뜰히 봉양(奉養)하는 효부(孝婦)로서 칭찬(稱讚)이 자자하다.
그의 시모(媤母)님은 10여년전(餘年前)부터 위장병(胃腸病)과 다리 관절염(關節炎) 등으로 기동(起動)이 불편(不便)하여, 화장실(化粧室)을 출입(出入)하거나 외출(外出)할 때는 최여사(崔女史)가 직접(直接) 시모(媤母)님의 손발이 되어서 항상 평안(平安)하게 모시고 있다.
역경(逆境)속에서도 한결같이 아무런 불평(不平)도 없이 공손(恭遜)한 태도(態度)와 상냥한 말씨로 조금이라도 불편(不便)할세라 환자(患者)가 기거(起居)하는 방(房)을 하루에도 수없이 드나들면서 때로는 맛있는 음식(飮食)으로, 또한 때로는 재미있는 화제(話題)를 끄집어 내어 시모(媤母)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고 있다.
“구환(救患)을 위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不拘)하고 시모(媤母)님의 병(病)을 고쳐보기 위해 친척(親戚)과 이웃을 찾아 치료비(治療費)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정성(精誠)이 놀라울 뿐이다. 오죽하면 교사직(敎師職)에 있으면서 셋방을 얻어 살고 있겠는가?”라는 어느 인근주민(隣近住民)의 말대로, 최여사(崔女史)의 신념(信念)은 병마(病魔)로부터 시모(媤母)님을 구출(救出)해 내야겠다는 일편단심(一片丹心) 그것뿐이었으니, 세상(世上)에 이토록 갸륵한 효부(孝婦)가 또 어디있으랴. 해마다 시모(媤母)님 생신(生辰)때는 새 옷을 지어 드렸으며, 평소 식사(食事)때마다 시모(媤母)님 발상에는 쌀밥과 고기반찬을 마련해 드리는 등, 그의 자상(仔詳)한 효심(孝心)은 놀라울 정도였다.
성실(誠實)한 기독교인(基督敎人)이기도 한 서여사(徐女史)는 자녀(子女)들에게도 노인(老人) 공경(恭敬)의 가정교육(家庭敎育)을 철저하게 실시(實施)하고 있는데, 이로 인(因)해 자녀(子女)들도 동리(洞里)에서는 소문(所聞)이 날 정도로 효자(孝子)·효녀(孝女)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근한 예(例)로 웃어른들이 길을 물으면 공손하게 대답(對答)한 후 목적지(目的地)까지 손수 안내(案內)하기도 했으며, 3남매(男妹)가 용돈을 아껴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맞을 때면 조그마한 선물(膳物)을 마련하여, 불우(不遇)한 친구들에게 전달(傳達)하는 등, 남달리 갸륵한 행실(行實)로 마을의 모범(模範)이 되어 왔다.
최여사(崔女史)는 이와 같이 가정(家庭)에서뿐만 아니라, 학교(學校)에서도 항상 모범교사(模範敎師)로 아동(兒童)과 동료교사(同僚敎師)부터 존경(尊敬)을 한 몸에 받아 왔다.
특히 불우(不遇)한 아동(兒童)이 있으면 직접(直接) 자택(自宅)까지 방문(訪問)하여 생활의욕(生活意欲)을 복돋워 주는 등, 그의 따뜻한 인간애(人間愛)는 언제나 학교(學校)에서 화제(話題)의 꽃을 피우곤 한다.
'의무(義務)를 존경(尊敬)하라'는 그의 좌우명(座右銘) 그대로, 최여사(崔女史)는 가정(家庭)에서나 직장(職場)에서나 의무(義務)를 철저하게 다하는 모범여성(模範女性)이었다. 시모(媤母)님을 위하여 극진(極盡)한 효성(孝誠)을 바치고 있는 것도 그가 지닌 의무중(義務中)의 하나라고 새기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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