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이복자(李福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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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1986년 4월 16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청도군 화양읍
효녀(孝女) 이복자(李福子) 26세

한창 부푼 꿈을 향(向)해 불꽃을 튀겨야 할 나이에, 오직 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만을 위해 일편단심(一片丹心) 정성(精誠)을 다 바치고 있는 효녀(孝女) 중의 효녀(孝女)가 있으니 그가 곧 이복자양(李福子孃)이다. 

이양(李孃)의 기험(崎險)하고 눈물겨운 운명(運命)은 그의 어머니에 의(依)하여 싹이 트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가 불우(不遇)하게 결혼(結婚)한 탓으로 이양(李孃)의 탄생(誕生)도 불행(不幸)의 꼬리를 밟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첫 번째의 시련(試鍊)으로 가정생활(家庭生活)이 순탄(順坦)하지 않았으므로 초등학교(國民學校)를 4학년(學年)도 채 마치지 못하고 중퇴(中退)해야만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이어서 밀어닥친 시련(試鍊)은 이복(異服) 형제(兄弟)들간의 시기(猜忌)와 질투(嫉妬)의 설움 속에서 시달리다가 끝내 이들과 영원(永遠)히 갈라서서 살아야 하는 비극(悲劇)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양(李孃)은 학교(學校)에서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부럽다말고 한(恨)이 맺히었으며, 어머니 일을 따라다니면서 걸음걸이를 배웠고, 배고픔을 견디는 것도 배웠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아이들을 보면 보리밥을 생각하면서 공부해 보겠다는 꿈과 잘살아 보겠다는 생각만으로 어린 시절(時節)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엎치고 덮친 피로(疲勞)로 마침내 병석(病席)의 몸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 제가 아들 구실, 딸 구실을 다 할 테니 너무 걱정마시고 몸조리나 잘 하세요.”하면서 그날부터 이양(李孃)의 효심(孝心)은 온 마을이 감동(感動)할 정도로 지극(至極)하기만 했는데, 몇 가지 효행(孝行)의 자취를 살펴보면 민간약(民間藥)으로 좋다고 하는 쥐와 토끼를 손수 잡아서 약(藥)을 만든 다음 어머니에게 복용(服用)토록 했는가 하면 처녀(處女)의 몸으로 깊은 산골짝을 헤매면서 약초(藥草)를 캐어다가 정성(精誠)들여 달여 드리는 등 그의 뜨거운 효행(孝行)은 끝이 없었다. 

버스 안내양(案內孃)으로 고달픈 직장생활(職場生活)을 하면서도 일손 틈틈이 집으로 달려가 손수 어머니의 대소변(大小便)을 받아낸 일도 불지기수(不知其數)였는데, 대소변(大小便)을 마치 음식물(飮食物) 만지듯 하는 그의 지극(至極)한 효심(孝心)은, 천사(天使)의 마음 그것이었다고 동민(洞民)들은 칭찬(稱讚)해마지않았다. 

“냄새 나는 오줌똥을 마치 밀가루나 주무르듯 하는 그의 입가에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마디의 불평불만(不平不滿)도 하는 것은 못 보았으니, 천사(天使)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를 지켜본 인근주민(隣近住民)의 말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사실(事實) 그대로였다. 

이양(李孃)은 비단 양친(兩親)에 대(對)해서만 알뜰한 것이 아니라, 처녀(處女)의 몸으로 앞장서서 경로(敬老)잔치를 주도(主導)할 만큼 마을 노인(老人)들을 위해서도 숨은 효녀(孝女)구실을 다하고 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나 할까. 이양(李孃)의 지극(至極)한 효행(孝行) 덕분(德分)으로 기동(起動)도 못하던 그의 어머니가 마침내 혼자 힘으로 화장실(化粧室)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건강(健康)도 많이 좋아졌으니, 세상(世上)에 이런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