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최영백(崔永伯)

페이지 정보

본문

제29회(1986년 4월 16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문경군 용암면
효자(孝子) 최영백(崔永伯) 53세

80 고령(高齡)의 노모(老母)를 모시고 있는 이 가정(家庭)의 가훈(家訓)은 '절약(節約)과 충효(忠孝)'란 다섯 글자라고 한다. 

최영백씨(崔永伯氏)는 남달리 자녀교육(子女敎育)에도 엄격(嚴格)했는데 그는 평소 자녀(子女)들에게 

“가정(家庭)에서의 인륜도덕(人倫道德)의 아름다운 기풍(氣風)은 그대로 사회(社會)의 인륜도덕(人倫道德)으로 승화(昇華)되어, 사랑과 신의(信義)가 충만(充滿)하는 도의사회(道義社會)의 실현(實現)으로 연결(連結)된다.”고 강조(强調)하면서, 충·효·예(忠·孝·禮)를 실천(實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타이르곤 한다. 

사실(事實) 최씨(崔氏)는 그가 말한 그대로 효(孝)의 수범자(垂範者)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80 노모(老母)를 대(對)하는 그의 일면(一面)에서 얼마든지 엿볼 수 있었다. 

조석(朝夕)으로 모친(母親)의 기거(起居)하는 방(房)을 드나들면서 문안(問安)인사를 드리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외출(外出)을 할 때나 외출(外出)에서 돌아왔을 때나 반드시 '출필고(出必告) 반필면(反必面)'을 빠짐없이 이행(履行)하고, 바깥 바람을 쐬어 드리기 위해 모친(母親)을 등에 업고 산책(散策) 기분(氣分)을 듬뿍 안겨 드리는 등, 그의 효심(孝心)은 극(極)히 사소(些少)한 예(禮)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빈 틈이 없었다. 

“나도 자식(子息) 등에 한 번 업혀 봤으면 하는 마음이 꿀떡같기만 하다. 늙으신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과 행실(行實)이 어찌나 갸륵한지 질투(嫉妬)가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최씨(崔氏)야말로 하늘 아래 둘도 없는 효자중(孝子中)의 효자(孝子)이다." 어느 이웃 노인(老人)의 솔직(率直)한 고백(告白) 그대로, 그의 이와 같이 갸륵한 효행(孝行)은 비단 가정(家庭)에만 머물지 않고, 온 마을 구석구석에서 그의 발자취를 찾을 수가 있었다. 

그 좋은 예(例)가 지난 1982년(年)부터 1985년(年)까지 6회(回)에 걸쳐 베풀어진 경로(敬老)잔치를 손꼽을 수 있겠다. 사비(私費) 30만(萬)원을 경로(敬老)잔치 마련에 희사(喜捨)한 최씨(崔氏)는, 그 후(後) 사비(私費) 15만(萬)원으로 연탄(煉炭) 500장을 경로당(敬老堂)에 마련해 주고, 3회(回)에 걸친 향연(饗宴)을 베풀어 노인(老人)들에게 기쁨을 안겨 드리기도 했다. 

“최씨(崔氏) 자신(自身)도 이미 50 고개를 넘은 초로(初老)임에도 불구(不拘)하고 연로(年老)한 노인(老人)들을 마치 하늘처럼 섬기고 있으니, 각박(刻薄)하기 짝이 없는 세상(世上)에 이런 갸륵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내 마음 같아선 달덩이 같은 훈장(勳章)이라도 달아 주고 싶은 심정(心情)이다.” 경로당(敬老堂)의 단골 노인(老人) 한 분은 이와 같이 말하면서 그의 효심(孝心)을 극찬(極讚)했다. 

특(特)히 최씨(崔氏)는 오갈 데 없는 행여걸인(行旅乞人) 이중만씨(李重晩氏)를 3년(年) 동안 자기(自己) 집에 기거(起居)시킨 후 수소문(搜所聞) 끝에 연고자(緣故者)를 찾아서 귀가(歸家)시킨 흐뭇한 인정(人情)의 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웃사람이 아사람을 보호(保護)하고 아끼며, 아랫사람이 웃사람을 공경(恭敬)하고 보호(保護)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必要)한 윤리(倫理)이며 도덕(道德)이며 질서(秩序)이다.” 라고 힘주어 말하는 최영백씨(崔永伯氏)는, 이웃 사랑하는 마음이 곧 겨레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