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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至極)한 효행(孝行)과 인자(仁慈)한 현모(賢母)로서의 진실(眞實)된 삶을 영위(營爲)하여, 오늘에 사는 한국여성(韓國女性)의 참된 모습으로 현대여성(現代女性)들의 귀감(龜鑑)이 될 중년여성(中年女性)이 있으니 그가 곧 변분연(弁芬蓮) 여사(女史)이다.
변여사(弁女史)는 1966년(年) 23세(歲)때 이영희씨와 결혼(結婚)하였다.
그의 남편(男便)이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결혼(結婚) 후(後) 곧 영일군(迎日郡) 송라(松蘿)의 시댁(媤宅)에서 분가(分家)하여 영천시(永川市)로 옮아서 살게 되었다. 다른 아들들은 모두 각자(各自)의 살길을 찾아 타지(他地)에 직장(職場)을 정(定)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시댁(媤宅)에는 팔순(八旬)의 노시부(老媤父)님께서 홀로 생활(生活)하고 계셨다.
평소 효심(孝心)이 지극(至極)했던 변여사(弁女史)는 혼자 계시는 노시부(老媤父)님이 항상(恒常) 마음에 걸리고 모시지 않음이 죄송(罪悚)스러워 여러 차례 시부(媤父)님을 찾아 뵙고 모시려 하였으나 번번이 완강(頑强)히 거절(拒絶)하시는 바람에 모셔 오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노경(老境)에 혼자 사시자니 돌보는 이도 없고 날로 체력(體力)이 쇠약(衰弱)하여 마침내 노환 (老患)으로 눕게 되셨다. 자식(子息)이 몇 있으나 모두 모셔갈 형편(形便)이 못되니 더욱 마음이 아파서, 눈치를 살펴 모셔오려고 애썼으나 오시지 않겠다는 고집(固執)을 꺾기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계속(繼續) 찾아 뵙고 울며 애원(哀願)을 하니 겨우 허락(許諾)이 떨어져 영천(永川)으로 모셔 오게 되었다.
대소변(大小便)도 잘 못 가리는 노환(老患)으로 계시는 시부(媤父)님을 둘째 며느리인 변여사(弁女史)가 자청(自請)하여 모셔 와서 조그만큼의 불편(不便)도 없도록 지성(至誠)껏 봉양(奉養)하고 있다. 그러면서 슬하(膝下)의 1남(男) 2녀(女)도 훌륭히 키워 나가고 있다.
강상(綱常)이 땅에 떨어져, 성한 노부모(老父母) 모시기도 기피(忌避)하려는 풍조(風潮)가 젊은 여성(女性)들 사이에 만연(蔓延)하는 현세정(現世情)에 반(反)하여, 둘째 며느리인 변여사(弁女史)는 기동불능(起動不能)인 시부(媤父)님을 간청(懇請)하여 모시고 지성(至誠)스러운 효심(孝心)을 발휘(發揮)하여, 의복을 깨끗하게 갈아 입혀 드리고, 때맞추어 음식물(飮食物)을 조절(調節)하여 시봉(侍奉)하고, 대소변(大小便)을 받아내면서 조금도 더럽다거나 냄새 난다 등으로 꺼리는 마음은 전연(全然)없이, 마음속으로 우러나는 진실(眞實)한 자세(姿勢)로 시봉(侍奉)을 하는 일은, 기노속(棄老俗)의 옛 악습(惡習)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현대(現代) 젊은이들의 사고(思考)경향(傾向)에 새로운 자극제(刺戟劑)가 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지극(至極)한 효성(孝誠)과 현모(賢母)로서의 인자(仁慈)함을 고루 갖추고, 역경(域境)을 헤쳐나가는 꿋꿋한 여성(女性)변여사(弁女史)야말로, 오늘에 사는 한국여성(韓國女性)의 사표(師表)가 되며 현대여성(現代女性)이 거울로 삼아 자랑할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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