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정연숙(鄭蓮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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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1987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김천시 평화동
효녀(孝女) 정연숙(鄭蓮淑) 21세

어려운 가정환경(家庭環境)에서 자라면서도 명랑(明朗)한 성격(性格)에다 근면(勤勉)하여 학업성적(學業成績)이 우수(優秀)하고 온갖 정성(精誠)과 예절(禮節)로 편모(偏母)를 공경(恭敬)하며 효심(孝心)으로 받드는 이가 있으니, 그는 여고(女高)를 졸업(卒業)하고 김천보건전문대학(金泉保健專門大學) 1학년(學年)에 재학중(在學中)인 정연숙양(鄭蓮淑孃)이다. 

가산(家産)이 빈궁(貧窮)함을 원망(怨望)하지도 불행(不幸)하다고도 여기지 않고, 고생(苦生)하시는 홀어머니를 뼈에 사무치도록 가슴 아파하며, 오로지 모친(母親)을 성력(誠力)껏 도와 열심(熱心)히 살아가는 정양(鄭孃)의 행적(行績)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1984년(年)에 상업(商業)을 하던 부친(父親)이 갑자기 병환(病患)으로 입원(入院)한 지 5개월(個月) 후(後)에 별세(別世)하였는데, 천여만(千餘萬)원의 치료비(治療費)를 치러야 했으니 어렵던 살림살이는 일조(一朝)에 더욱 엉망이 되고 말았다. 

정양(鄭孃)의 어머니는 남편(男便)을 잃은 한없는 슬픔을 안은 채, 알거지가 된 기막힌 가정(家庭形便)과 앞으로 3남매(男妹)를 양육(養育)할 일로 괴로움을 참고 견디면서 생계(生計)를 위하여 시골 장(場)을 이곳 저곳 돌면서 행상(行商)을 시작했던 것이다. 

정양(鄭孃)은 날마다 새벽에 시장(市場)에 갈 어머니를 도와 무거운 짐을 리어카에 싣고 버스 정류장(停留場)까지 운반(運搬)해 드리고 저녁이면 하교(下校)후(後)에 어머니의 귀가시간(歸家)時間)을 맞추어 버스 정류장(停留場)에서 기다렸다가 그 짐을 받아 싣고 오는 일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매일(每日)같이 빠짐없이 실행(實行)하였다. 

모친(母親)의 매일(每日)같은 행상(行商)에 불편(不便)함이 없이 시장(市場)에 갈 수 있도록 정양(鄭孃)은 미리미리 세심(細心)한 데까지 준비(準備)를 하여 어머니를 도왔다.

집안 일은 동생과 함께 빈틈없이 처리(處理)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명랑(明朗)하게 모친(母親)을 대하여 위로(慰勞)하였고 아울러 학업(學業)에도 충실(忠實)하였으므로 그의 모친(母親)은 모불우심(母不憂心)은 인녀효(因孝女)로, 쌓인 피로(疲勞)가 일시(一時)에 풀린다고 한다. 

그러하던 모친(母親)이 1985년(年) 8월(月)에 병환(病患)으로 1개월간(個月間)을 자리에 눕게 되었을 때는 잠시(暫時)도 곁을 떠나지 않고 병간호(病看護)에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을 쏟아 완쾌(完快)를 시켰으며 언니와 동생의 뒷바라지도 소홀(疏忽)함이 없이 돌보는 그 정황(情況)을 본 이웃 주민(住民)들은 정양(鄭孃)의 효제(孝悌)의 정(情)에 눈물겨워 감탄(感歎)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어린 학생(學生)의 이와 같은 효성(孝誠)은 보기 드문 일로, 많은 젊은이들이 본받아야 할 효행(孝行)이매 그 행적(行績)은 높이 평가(評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