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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자양(都慶子孃)이 중학(中學) 2학년(學年)이었던 3년전(年前)에 노무자(勞務者) 일로 가정생활(家庭生活)을 이끌어 나가던 부친(父親)이 불의(不意)의 사고(事故)로 일절(一切)의 기동(起動)이 불능(不能)한 상태(狀態)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부친(父親)이 병상(病床)의 몸이 된 지가 4년(年)이나 되니, 가정생활(家庭生活)은 날로 어려워지고 파출부(派出婦)로 일하면서 어려운 가계(家計)를 간신히 꾸려나가던 모친(母親)의 부담(負擔)은 더욱 가중(加重)되었다.
부친(父親)이 병석(病席)에 누워 있으니 이를 안타까워 못 견뎌 하던 도양(都孃)은 매일(每日)같이 학교(學校)에서 돌아오면 부친(父親)곁에서 조금도 불편(不便)함이 없도록 간호(看護)에 효성(孝誠)을 다하며 대소변(大小便)을 받아내는 일을 비롯하여 더렵혀진 의복(衣服)가지나 침구류(寢具類)의 빨래를 하며, 부친(父親)의 주변(周邊)을 항상 깨끗하게 치워 두는 데도 소홀(疏忽)함이 없었다.
학교(學校)에서 일과(日課)를 마치고 바쁜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보면 모친(母親)은 파출부(派出婦)로 일을 나가고, 텅 비어 있는 집에는 빈 방에서 홀로 천정(天井)만을 쳐다보며 무료(無聊)하게 누워 있는 부친(父親)의 모습을 대(對)하게 된다.
이러할 때는 한(限)없이 마음이 아팠다. 속 눈물을 지으며 방을 치우고서 식사준비(食事準備)를 하고 집안을 깨끗이 정돈(整頓)해 놓고 부친(父親)곁에서 공부하여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다가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급(急)히 반갑게 마중하여 피곤(疲困)해 하는 모친(母親)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서, 오늘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이야기하며 위로(慰勞)하는 자상한 태도(態度)야말로, 북치고 장구치는 격(格)으로 어른스럽지 않은가.
날이면 날마다 되풀이되는 참기 어려운 이런 생활(生活)에도 조금도 불평(不平)이나 불만(不滿)스러운 표정(表情)을 짓는 일 없이, 항상 명랑(明朗)한 마음과 꿋꿋한 자세(姿勢)를 견지(堅持)하면서 부모(父母)를 위안(慰安)하고 격려(激勵)하면서 봉양(奉養)에 정성(精誠)을 다하였다.
한편, 이와 같이 견디기 힘들도록 어려운 가정형편(家庭(形便) 속에서도 실의(失意)나 좌절(挫折)을 하지 않고, 학교생활(學校生活)에서도 굳건히 매사(每事)에 근면성실(勤勉誠實)하여 다른 학생(學生)의 모범(模範)이 되고 있다.
이렇게 곤경(困境)을 인내(忍耐)와 슬기를 다하여 극복(克服)하면서, 한결같이 효도(孝道)에 전심전력(全心全力)하고 있는 도양(都孃)이야말로 뭇 젊은이들에게 ‘산 효행(孝行)의 표상(表象)’이 된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否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이러한 도양(都孃)에게 미구(未久)에 반드시 밝은 날이 비추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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