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박병호(朴炳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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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1987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의성군 춘산면
효자(孝子) 박병호(朴炳鎬) 67세

자신(自身)의 나이가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노령(老齡)이면서도 ‘소학명륜편(小學明倫篇)’에 증자(曾子)가 말씀하신 대로 ‘효자지양노야(孝子之養老也)엔 낙기심(樂其心)하고, 불위기지(不違其志)며 락기이목(樂其耳目)하고 안기침처(安其寢處)하며, 이기음식(以其飮食)으로 충양지(忠養之)니라’의 봉양(奉養) 구절(句節)을 실천(實踐)하기에 잠시도 게을리하지 않는 효행(孝行者)가 있으니, 그가 바로 당년(當年) 67세(歲)인 박병호씨(朴炳鎬氏)이다. 

89세(歲)의 노부(老父)께서 10년전(年前)부터 노환(老患)으로 누워 계시는데, 병간호(病看護)에 성심(誠心)을 다하고 있음은 물론(勿論)이며 병석(病席)에 계시는 노부(老父)의 무료(無聊)함을 달래 드리기 위하여 이웃 노인(老人)을 초청(招請)하여 음식(飮食)을 대접(待接)하며 노부(老父)의 말벗이 되도록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조석(朝夕)으로 식사(食事)때에는, 부인(夫人)과 함께 꼭 사랑방으로 가서 어른과 같이 식사(食事)하면서, 그날 그날의 일과(日課)나 또는 밖에서 보고 듣고 한 일들을 이야기해 드렸다. 

또 때로는 노환(老患)의 부친(父親)을 리어카에 모셔 동네 구경시키는가 하면,때로는 등에 업어서 자기(自己)네 농토(農土)구경을 시켜 드리면서 부친(父親)의 무료(無聊)함도 덜어 드리기도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있다. 

그리고 밤에는 부친(父親)과 정담(情談)을 나누며 위로(慰勞)해 드리면서 자신(自身)이 농사(農事)일에 지친 피곤(疲困)함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친(父親)께서 잠들기 전(前)에는 잠자리에 드는 일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노환(老患)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양약(洋藥)으로는 별다른 효험(效驗)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한약(韓藥)으로 효험(效驗)을 얻고자 군위(軍威) 고로(古老) 영천(永川) 강릉(江陵) 등지(等地)로 구약(救藥)하는 데에 각고(刻苦)의 노력(努力)을 기울였다. 이처럼 전국(全國) 각처(各處) 어디든지 좋은 약(藥)만 있다고 하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달려가 구(求)하여 시탕(侍湯)해 드리면서 간병(看病)에 성력(誠力)을 다하였다. 

오로지 부친(父親)의 병환(病患)이 나아지길 염원(念願)하는 효심(孝心)은, 날이 가고 달이 가도 한결같았고, 주소일념(晝宵一念)으로 잠시(暫時)나마 부친(父親)께서 성한 몸으로 있으시는 모습을 보는 것을 소원(所願)으로 삼고 있다. 

이를 보고 있는 인근주민(隣近住民)들은 입을 모아 박옹(朴翁)은 효행(孝行)이 천심(天心)이라며 칭찬(稱讚)을 아끼지 않는다. 

오늘날, 서구풍조(西歐風潮)가 거세게 밀어닥쳐 소위(所謂) 핵가족시대(核家族時代)에 듦으로써 효(孝)의 전통(傳統)이 날로 쇠퇴일로(衰退一路)에 있음을 아무도 부인(否認) 못할 현실(現實)에서 볼 때, 비록 년만(年滿)하신 구시대(舊時代) 사람의 행실(行實)이라고 할지 모르나, 그의 지극(至極)한 효행(孝行)이야말로 만인(萬人)의 산 교훈(敎訓)이라 아닐 할 수 있으랴! 

참으로 우리들의 귀감(龜鑑)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