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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순애(南順愛) 여사(女史)는 1964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이성학씨와 결혼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살아 온 효부(孝婦)이다.
남편 이성학씨는 이곳 문경군 가은읍 작천리의 토박이지만 농토라고는 한 편도 없어 은성광업소에서 광부(鑛夫)로 일을 해서 그날 그날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남여사(南女史)는 어려운 생활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마을의 온갖 일을 돕고 궂은 일도 마다 않고 도맡아 하고 있다.
남여사(南女史)는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마음은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활신조(生活信條)로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명랑하게 가정을 이끌어 가면서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시어머니가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온갖 정성(精誠)을 다한다.
자기 집에 사랑방을 마련해서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식사대접과 술대접을 하는 등 경로 효친사상(孝親思想)이 투철하다.
그러던 중, 1983년 3월부터 뜻하지 않게도 시어머니께서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으므로 안과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약을 써 보았으나 끝내 회복되지 않고 마침내 앞을 보지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되었다.
시어머니가 자리에 눕게 되자 그녀는 끼니때 마다 시어머니가 자리에 줍게 되자 그녀는 끼니때 마다 시어머니의 식사시중을 들어야 하고, 대소변을 받아 내어야 하고 날마다 손발을 깨끗이 씻겨드리고, 깨끗하게 빨래한 옷을 갈아 입히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해서 병구원(病救援)을 했다.
이에 감복한 동네 할머니들이 그의 효성(孝誠)을 칭찬하면 자식된 도리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광산에서 중노동을 하는 남편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도리어 시어머니께서 불편하시지나 않을까 걱정을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지극한 효심(孝心)을 지켜 본 맏아들 이용희(28세)와 둘째 아들 이용길(22세)도 아침저녁으로 할머니께 문안 드리고 근면(勤勉) 성실하여 멀리 이웃 동네까지 착하다는 소문이 나 있다.
이렇게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고 자녀들을 훌륭하게 기르고 눈먼 시어머니께 지극한 효심으로 극진히 봉양하는 남여사(南女史)을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향리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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