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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朴明順) 여사(女史)는 가난한 집의 고명딸로 태어나서 하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부모님을 도우고 일하면서 자랐다.
그런데 11세 때 아버지가 급환(急患)으로 세상을 떠나고 두 오라버니와 동생이 괴질(怪疾)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두 오라버니는 바보가 되었고 동생은 죽고 말았다.
졸지에 아버지와 동생을 잃고 두 오라버니가 불구자가 되었으니 집안이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넋을 잃고 실의에 빠져 눈물로 세월을 보내었다.
이때부터 박여사(朴女史)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할어버지를 모시고 집안 실림을 도맡아 왔는데 할아버지도 멀지 않아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대소변도 못 가리는 두 오라버니와 실의에 빠진 어머니를 모시고 기구한 운명 앞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비참한 생활을 이어왔다.
세월이 흘러 박여사(朴女史)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으나 늙으신 홀어머니와 천치 바보가 된 두 오라버니를 두고 시집갈 수 없어 시집 안 가기로 했는데 20세 때에 처가살이라도 좋다는 이채우씨와 결혼하게 되어 어머니를 봉양하고 두 오라버니의 시중을 들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은 술로 세월을 보내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혼한지 10년만에 남편은 어린 자녀 3남 1녀를 두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이 죽고난 뒤 박여사(朴女史)는 홀어머니와 천치 바보가 된 두 오라버니의 시중을 들고 뒷바라지를 하면서 자녀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비전박토(非田薄土)로써는 도저히 살림을 꾸려갈 수가 없어 남의 집 날품팔이는 물론 마을의 길흉사는 도맡아 하고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체념(諦念)하고 한 번도 불평하거나 좌절(挫折)하지 않았다.
이러한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복해서 장남은 군에 복무하고, 차남도 고등학교를 마쳤고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도 공부를 잘하고 어른을 공경(恭敬)하는 착한 효자(孝子)라고 칭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박여사(朴女史)는 연로하신 어머니(86세)와 불구자인 두 오라버니 상은(66세), 상형(60세)을 수십년 동안 극진히 모시고 자녀를 훌륭하게 길렀기에 그 효성(孝誠)과 우애(友愛) 정신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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