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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숙(元瓊淑) 여인(女人) 1984년 22세 때 구미시에서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는 송석호씨와 결혼하여 박봉으로 어려운 가정을 꾸려가면서 4대가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그것도 환자가 3명이나 되는 아주 어려운 가정을 묵묵히 병구완(病救援)을 하면서 화목(和睦)하게 이끌어 가고 있는 효부(孝婦)이다.
원여인(元女人)는 귀가 어둡고 거동이 부자유한 고령(87세)의 시증조모님(媤曾祖母)의 식사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는 일과 중풍으로 지체가 부자유한 81세의 시조모(媤祖母)님의 시중을 들어야 하고 게다가 54세의 시아버지(媤父)가 간경화증으로 오랫동안 앓고 누워계시는 병구완을 해야 하는 3중의 괴로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이 한집에 3명의 중환자가 누워 있는 병간호를 혼자서 도맡아 한다는 것은 아무리 건강한 젊은 여인이라 하더라도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던 중, 1987년 8월에 시증조모(媤曾祖母)님이 사망하자 원여인(元女人)은 시할머님과 시아버님의 병구완에 전심전력(全心全力)을 기울이게 되었다.
중풍으로 고생하시는 시할머님이 병안에만 계시는 것이 너무 갑갑하다고 생각해 때때로 손수레에 태워서 마을 나들이를 하시도록 도와 드리고 날마다 손발을 깨끗이 씻어 드리고 자주 빨래를 해서 깨끗하게 옷을 갈아 입히는 등 온갖 정성(精誠)을 다한다.
한편, 간경화증으로 신고(辛苦)하시는 시아버지는 남편이 벌어오는 월수입 30만원으로는 병원에 입원할 처지도 못되고 해서 원여인(元女人)은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간경화에 좋다는 약을 다 구해 복용하게 하고 심지어는 직접 산에 가서 약초(藥草)를 캐어다가 달여 드리기도 하고 얼마의 돈이 생기면 식생활에 드는 비용 말고는 일체의 지출을 절약해서 시어버지의 약값으로 충당하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이러한 그녀의 지극한 정성으로 시아버지의 병환(病患)은 차차 회복이 되어 이제는 마을 나들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여인(元女人)의 이러한 효행(孝行)을 지켜 본 마을 사람들은 효부는 인위(人爲)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내리시는 것이라고 이구동성(異口同聲) 칭송이 자자하다.
오늘날 효친(孝親)의 전통이 날로 쇠퇴(衰退)해 가는 현실에서 원여인(元女人)의 효행(孝行)은 만인의 교훈(敎訓)이자 귀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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