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고봉학(高鳳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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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1989년 4월 20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성주군 초전면
효부(孝婦) 고봉학(高鳳鶴) 51세

고봉학(高鳳鶴) 여사(女史)는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의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고비를 모르고 성장한 순박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1961년 22세때 송홍덕씨와 결혼하여 평온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면서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시어머니(媤母)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시아버지(시부(媤父)를 극진히 모시고 살아 온 효부이다.

넉넉한 집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힘드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으나 생업(生業)인 농사일을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맹인인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어야 했다.

그러던 중, 1975년 3월에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앞길 하수구 공사를 하다가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쳐 1년 동안이나 병석(病席)에 눕게 되었다.

맹인인 시어머니를 불편하지 않도록 해 드려야 하고 남편의 병간호(病看護)도 해야 하고 그렇다고 농사일을 소홀히 할 수도 없게 되어 고여사(高女史)는 하나의 몸으로 세가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눈먼 시어머니께 문안 드리고 식사와 이부자리 보기와 대소변의 시중을 들어야 하고 남편의 병구완(病救患)과 농사일까지 해야 하니 몸은 지칠대로 지쳤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1984년에 시아버지 송상권(宋相權)씨가 노환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되어 거리를 방황하면서 정성껏 시중드는 며느리의 험담을 늘어놓고 욕설을 퍼붓고 다니는 것이었다.

고여사(高女史)도 처음엔 사람인지라 억울하기도 하고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 마디의 대꾸나 불평도 하지 않고 더욱 정성(精誠)을 들여 극진히 모셨다. 

그러던 중 1987년 8월에 며느리의 정성도 아랑곳 없이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인 시아버지는 아직도 살아계시고 병은 조금도 차도가 없다.

세상에는 온갖 병도 있고 숱한 고난도 있지만 고여사(高女史)의 가정처럼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는 집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고난과 역경(逆境)을 굳은 의지(意志)로 극복하고 1남 2녀의 자녀를 잘 교육해서 자녀들 모두가 착하고 학업성적도 좋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어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앞 못 보는 맹인 시어머니를 정성껏 돌봐 드리고 병든 남편의 병구원(病救援)에 정성을 다하고 정신질환자인 시아버지를 돌보면서 가정을 원만하게 다스리며 농사일과 자녀교육에도 소홀히 하지 않은 고여사(高女史)의 효행(孝行)을 마을사람들 모두가 극구(極口) 찬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