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김말연(金末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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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1989년 4월 20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구미시 비산동
효부(孝婦) 김말연(金末連) 62세

김말연(金末連) 여사(女史)는 20세의 꽃다운 나이로 생계 유지조차 어려운 적빈(赤貧)한 가정으로 출가해서 세상사람들이 다 외면하는 나병(癩病)환자인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피부에 진물이 나는 중환자를 날마다 한 두 차례씩 따뜻한 물로 목욕시키고 의복과 침구도 날마다 세탁해서 깨끗하게 갈아 드리는 등 7년여간 병구완에 심혈(心血)을 기울인 출천지(出天之) 효부(孝婦)이다.

뿐만 아니라 전염될까봐 두려워한 이웃사람들은 김여사(金女史)의 지극한 효성(孝誠)에는 감동(感動)하면서도 나병환자를 마을에 둘 수 없다고 온 마음사람들이 총동원해서 격리(隔離)를 요구해와 하는 수 없이 마을 뒷산 외딴 곳으로 옮겨 움막을 지어 거처하게 되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김여사(金女史)는 개의치 않고 움막으로 가서 고독과 병고(病苦)에 시달리는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보살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남편은 자포자기하여 가정을 팽개치고 술과 노름으로 허송세월하다가 가산을 탕진하고 마침내 병들어 눕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마을 뒷산 움막에서 신음하는 시어머니를 보살펴야 하고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도 돌보아야 하고 6남매의 뒷바라지도 해야 하는 그야말로 1인 3역을 맡은 초인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온갖 정성을 쏟았으나 끝내는 시어머니도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어머니와 남편을 보내고 난 김여사(金女史)는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6남매를 양육해야 했다.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고 공사장에 나가서 막노동도 하고 생계를 위해서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으나 호구(糊口)에도 급급했다.

그러나 자식들은 훌륭하게 길러야 한다는 일념으로 구미에 공단이 들어서고부터는 회사의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어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6남매를 중등교육까지 시켜 사회의 역군으로 성장시켰다.

세상에는 기구한 운명도 있고 허다한 고난도 있겠지만 김여사(金女史)처럼 험한 운명과 고난(苦難)은 드물 것이다.

누구라도 기피하는 나병환자를 시어머니로 모시고 세상의 이목이나 멸시를 개의치 않고 온갖 정성을 다해 간병(看病)한 거룩한 그녀의 효성(孝誠)에 그 누구라도 감복(感服)하고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인간애에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