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최춘자(崔春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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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1989년 4월 20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김천시 지좌동
효부(孝婦) 최춘자(崔春子) 48세

김천시 지좌동 5통에 살고 있는 최춘자(崔春子) 여사(女史)는 23세에 결혼해서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시어머니와 남편과 함께 넉넉하지는 않아도 남부럽지 않게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남편이 우연히 원인불명(原因不明)의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남편의 수입으로 생활(生活)하다가 남편이 눕게 되자 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남편의 병 치료를 위해서 그 동안 모두 두었던 돈은 치료비에 충당(充當)해 버리고 말았다.

정성껏 간호한 보람도 없이 남편은 78세의 노모(老母)와 아내와 어린 남매(男妹)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의 회생(回生)을 간절히 바랬던 최여사(崔女史)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아 한 동안 삶에 대한 의욕(意慾)도 잃어버리고 바깥 출입을 일체 끊고 말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78세의 시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의 장래가 가여워 한 집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각오(覺悟)를 새롭게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웃사람의 도움으로 파출부(派出婦)로 일하게 되었으나 그것도 필요할 때에만 부르는 것이어서 안정된 직업은 아니었다.

그래서 건축하는 공사장에 가서 벽돌을 운반하는 일을 해보았으나 힘에 부쳐 낙상(落傷)도 여러번 했다.

그러나 이런 일도 매일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이웃집 미용실에 가서 일은 했지만 수입이 너무 적어 생계(生計)를 꾸려 가는데 힘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여사(崔女史)는 늙은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기도 하고 새 옷을 사다가 입혀 드리기도 하고 시모께서 몸이 불편 하실 때는 일터에 나가지 않고 정성껏 병간호(病看護)를 하였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명랑하게 상냥하게 시어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고 시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병을 빨리 낫도록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어머니의 지극한 효성(孝誠)에 감동(感動)한 자녀들도 할머니에게 효도(孝道)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아들은 회사에 취직했고 딸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버리고 재혼(再婚)하는 예도 흔한데 늙은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奉養)하고 자식을 훌륭하게 교육시킨 최여사(崔女史)의 효행(孝行)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의 귀감이 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