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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복(金台福) 여사(女史)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시모(媤母)께 효심(孝心)이 지극하고 경로심(敬老心)또한 출중(出衆)한 효부(孝婦)이다.
김여사(金女史)는 1981년 7월부터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위해서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가 예배하고 물찜질 등 가정치료법으로 치료한 뒤 직장에 출근한다.
교인이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시어머니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정성(精誠)껏 눈물로 기도(祈禱)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갸륵한가.
매일 새벽 한결같이 실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김여사(金女史)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실천(實踐)하고 있다.
1984년 여름, 병고에 시달려 지친 시어머니가 세상을 비관하고 실의에 빠져 심한 우울증(憂鬱症)에 시달렸다.
이것을 감지한 김여사(金女史)는 청송 약수터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관광시키고 치료도 해 드리고 마음을 즐겁게 해 드렸다.
김여사(金女史)는 모든 병은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등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즐겁게 해 드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후 여러군데 수소문해서 중풍에 좋다는 약을 구해서 복용시켰더니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지금은 차츰 회복기(回復期)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가정의 화목이 곧 효도(孝道)하는 길이라는 신조를 가진 김여사(金女史)는1986년에 시동생이 가내공업을 시작하면서 부족한 사업자금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직장에서 각종 융자금(融資金)을 대출(貸出)받아 주었으나 경영부실로 폐업(閉業)하게 되자 융자금의 상환(償還)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김여사(金女史)는 불평을 하지 않고 2년간의 월급으로 대출금 상환에 충당(充當)해서 해결하는 등 동기간의 우애가 돈독(敦篤)한 모범 여성이다.
한편, 근무처인 대명 8동사무소에서도 공무에 충실하여 많은 동민들의 민원업무(民願業務) 특히 노인들의 상담역(相談役)으로 언제나 온화(溫和)하고 친절하게 일을 처리해주므로 전형적인 한국여성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매년 경로주간에는 동민들과 함께 행사 준비에 참여하여 건강하지 못한 노인들은 직접 모시고 나와 하루를 즐겁게 노시도록 하고 액에 모셔다 드리는 등 경로심(敬老心)이 투철(透徹)하다.
특히 시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간병(看病)으로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일요일에는 함께 손잡고 교회도 나가고 때로는 시장나들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지켜본 마을사람들 모두가 칭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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