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안복희(安福姬)

페이지 정보

본문

제32회(1989년 4월 20일)
효행상(孝行賞)
대구직할시 동구 불로동
효부(孝婦) 안복희(安福姬) 42세

서울배화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10월에 백남규(白南圭)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둔 안복희(安福姬) 여사(女史)는 시력이 온전하지 못한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내면서 아침 저녁으로 극진히 봉양(奉養)하는 효부(孝婦)이다.

그러던 중, 1977년 3월 18일 뜻하지 않게도 남편이 어떤 차량에 치어 뇌 손상과 척추손상 그리고 양쪽 다리가 마비되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어 입원치료 했으나 끝내 불구(不具)의 몸이 되고 말았다.

달아난 뺑소니 차는 찾을 길이 없고 가산은 입원 치료비도 탕진(蕩盡)해 버리고 말았으니 어쩔 수 없이 거리에 나 앉게 되었다.

갈 곳이 없는 그들 다섯 식구는 불로교(不老橋) 다리 밑에서 노숙(老宿)하면서 안여사(安女史)는 날품팔이 노동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延命)해 가야 했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눈먼 시어머니와 불구의 몸인 남편의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마음을 쓰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막노동을 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다리 밑에서 천막을 치고 추위를 이겨낸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끼니때마다 국수로 때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날이 새면 이곳저곳 찾아 다니면서 닥치는대로 막노동을 하고 가족(家族)을 위해서는 청소부, 파출부, 가정부, 공사장의 막노동 등 닥치는대로 호구지책(糊口之策)을 강구하지만 언제나 명랑하고 웃음을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는 안여사(安女史)는 가계를 꾸리고 남은 돈을 시어머니에게 맡겨두는 효성(孝誠)이 지극한 주부이다.

안여사(安女史)는 어떠한 어려움도, 역경(逆境)도 좌절(挫折)하지 않고 성실과 인내(忍耐)로 극복(克服)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성실(誠實)과 근검절약(勤儉節約)생활을 한 결과 지금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월수입 2십만원이 채 못 되는 노임으로 시어머니를 봉양(奉養)하고 남편의 약값과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과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들의 학비를 충당(充當)하고 있으니 생계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奉養)하고 남편의 뒷바라지와 자녀들의 교육에 소홀하지 않아 자녀들이 착하고 학업성적도 우수하게 양육했으니 안여사(安女史)의 노력과 효성(孝誠)을 이웃사람들은 입을 모아 칭송(稱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