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유후남(柳後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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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1990년 4월 20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봉화군 봉화읍
효부(孝婦) 유후남(柳後男) 56세

유후남(柳後男) 여사(女史)는 안동 풍산유씨(豊山柳氏) 가정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아 예절(禮節)바르고 착한 규수로 자라 19세 때 이진호씨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 남편은 객지에서 학교에 다니고 유여사(柳女史)는 집에서 시부모를 모셨는데 남편이 대학졸업하고 지방에서 교편을 잡게 되어 얼마 동안은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나 남편이 부산으로 전근가게 되자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시부모님의 뜻을 좇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다.

1970년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갈 때 유여사(柳女史)는 불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면서 새마을 부녀회를 조직하고 구판장과 공동양계장을 설치하여 그 수익금을 분배하여 1가정 1통장 갖기 운동을 전개하여 저축심(貯蓄心)을 고취하고 재래식 부엌을 현대식으로 개량하는 등 7년 동안 노력한 성과가 크므로 77년에는 전국 최우수 새마을 부락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가져왔으며 부녀회장으로서 헌신적인 노력을 한 공로(功勞)가 인정되어 도지사상 2회, 군수상 3회 등 많은 표창장과 공로패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30년 전부터 소아마비로 이 집 저 집 떠돌아 다니던 의지할 곳 없는 불우한 노인 정적선(78세)씨를 불쌍하게 여겨 문간채 방을 내어 주고 혼처를 주선해서 결혼까지 시켜주었으나 부인은 1980년에 지병(持病)으로 사망하고 정노인도 1988년에 병세가 악화되어 눕게 되자 유여사(柳女史)는 2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시켜 병간호(病看護)를 하고 치료해 주었으며 지금도 친부모처럼 보살피고 있으니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유여사(柳女史)의 인간애(人間愛)의 정신을 칭송하고 있다.

지금도 남편은 부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8년 전에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83세의 시어머니가 살아 계시는데 유여사(柳女史)가 무남독녀(無男獨女)라 의지할 곳 없는 친정 어머니 (79세)를 모셔다가 시어머니와 함께 극진히 봉양(奉養)하고 있다.

찾으시는 음식은 계절과 원근을 가리지 않고 마련해 드리고 지극정성으로 시봉(侍奉)하고 있다.

자녀 3형제들도 어머니의 효행(孝行)에 감복(感服)하여 모두 훌륭하게 성장해서 사회의 유능한 일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 같은 유여사(柳女史)의 효행을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