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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식(李今植) 여사(女史)는 18세 때 황도상씨의 장남(長男) 황 열씨와 결혼했는데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남편이 행방불명되어 오늘날까지 생사를 모르고 생이별한 상태로 살고 있다.
슬하에 한 점 혈육도 없이 행방불명으로 생사조차 모르는 남편의 생환을 기다리면서 이금식(李今植) 여사(女史)는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고 40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자신의 괴로움이나 슬픔은 나타내지 않고 일찍이 자식과 생이별(生離別)하고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기약 없는 생환(生還)을 애타게 빌면서 기다리시는 시부모(媤父母)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위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시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괴로움을 내색하거나 눈물을 보이지 않고 참고 견디며 살아 왔다.
농촌의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인내로써 극복(克服)하고 평생을 수절(守節)하면서 살아 온 이여사(李女史)는 그 동안에 시동생과 시누이를 양육하여 결혼시켜서 분가 해주고 출가시키는 뒷바라지를 했으며 시부모님의 봉양(奉養)을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감수하고 한마디의 불평이나 내색을 않고 묵묵히 살아왔다.
시부모님의 건강을 위해서 농한기에는 험한 산에 올라가서 약초를 캐다가 달여 드리고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시봉했으므로 연로하신 시부모님이 아직도 건강하다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여사(李女史)의 효성(孝誠)에 감복(感服)하고 칭찬해 마지 않는다.
요즘 세상은 남녀평등사상이 철저하고 심지어는 여성상위시대라 떠드는 온갖 사람들이 살고 있어 알들 딸 낳고 정답게 살다가도 생활이 곤경에 빠지거나 남편이 실수를 하면 자식들도 다 버리고 이혼하는 수도 있고 남편이 멀쩡하게 있는데도 외간 남자와 정(情)을 나누고 가정을 파괴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여사(李女史)와 같이 슬하에 혈육도 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향방조차 모르는 남편을 40년 동안이나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시고 시동생과 시누이의 뒷바라지까지 하며 어려운 가정 살림을 꾸려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인륜도덕(人倫道德)이 땅에 떨어진 오늘날 세상에서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18세때 시집와서 남편 없이 40년 동안 수절(守節)하면서 시부모(媤父母)님을 봉양(奉養)하는 이여사(李女史) 가정에 행운(幸運)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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