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이숙자(李淑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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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1990년 4월 20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문경군 문경읍
효부(孝婦) 이숙자(李淑子) 28세

이숙자(李淑子) 여인(女人)은 1980년 18세 때 박성수씨와 결혼하였는데 시가(媤家)에는 농토 900평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 8순이 넘는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이 계시는 3대가 한 집에 사는 층층시하(層層侍下)였다.

나이어린 신부는 신혼 초부터 87세의 시할머니가 평소에 노환(老患)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누워계시므로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고 자주 보살펴 드려야 했다.

이웃집에서 날품팔이로 일하다가도 잠시 쉬는 시간에 달려가서 시중을 들어 드리고 일터에서 나오는 음식도 따로 싸두었다가 시할머니께 가져다 드리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해서 시봉(侍奉)하였나 작년(1989년)에 별세하시었다.

이여인(李女人)은 자기 자신의 효성(孝誠)이 부족하며 간병을 잘못한 탓이라고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고 애통해 하였다.

시할머니의 시중을 드는 것만으로도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6순의 시아버지께서 지병인 늑골염으로 고생하시다가 1987년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입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결혼반지를 팔고 품삯을 미리받아 치료케 하였으니 그녀의 이러한 효행(孝行)을 지켜 본 마을 사람들이 감동(感動)되어 성의껏 얼마씩의 돈을 거두어 치료비에 도움을 주었기에 시아버지의 병을 고쳐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여인(李女人)은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서 날품팔이로 한푼 두푼 돈을 모으고 고사리와 산나물을 채취해서 내다 판 돈을 푼푼이 모아 해마다 효도관광(孝道觀光)을 시켜 드렸다.

돈 있는 사람이야 돈으로 하는 일이니까 어려울 것 없겠지만 가난한 새댁이 푼푼이 돈을 모아 효도관광을 시켜드린다는 것을 효성(孝誠)이 지극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이렇게 나이 어린 며느리가 헌신적으로 효도(孝道)했음에도 불구하고 1989년 시할머니가 돌아가신 그해에 시아버께서도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요즘 20대의 젊은 주부 대다수가 자기 자신의 몸치장과 편한 것만 추구하고 허영(虛榮)과 사치에 눈이 어두워져 과소비의 경향이 팽배한 시대인데 이여인(李女人)은 신혼 초부터 희생적으로 날품팔이를 하면서 근검절약(勤儉節約) 모은 돈으로 시부모님을 효도관광 시켜드리고 가난한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연로하신 시할머니와 병든 시아버지께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시봉(侍奉)하는 마음을 세인(世人)이 본 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