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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음정(金陰貞) 여인(女人)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한 약혼자의 뒤를 따라 아버지와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남동생에게 맡겨놓고 국가를 위한 우국충정과 약혼자에 대한 사랑으로 자진해서 군에 입대하여 위험한 전선(戰線)에 뛰어들었다.
누님의 뒤를 따라 입대한 동생은 불행히도 금화(金化)지구 전투에서 자신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육군병장으로 제대하였다.
김여인(金女人)이 제대를 하고 보니 아버지는 사망하셨고 어머니만 홀로 계셨는데 어머니와 주의 사람들이 간곡하게 결혼하라고 권유했으나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두고 결혼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36년 간 어머니를 극진(極盡)히 모시고 있다.
김여인(金女人)은 36년간이란 긴 세월을 결혼도 하지 않고 남의 집 날품팔이와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오면서 어머니의 시중을 들며 지극정성으로 봉양(奉養)하고 매월 정기적으로 영양주사를 놓아드리는 등 효성(孝誠)이 지극하기에 1978년 3월에 대한전몰 군경 유가족회에서는 그 효성을 기리어 효녀선행상(孝女善行賞)을 수여한 바도 있다.
김여인(金女人)은 3년 전부터 휠체어를 구입해서 화창한 날에는 어머니의 답답한 심정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가까운 유원지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등 연로(年老)하신 어머니의 불편한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온갖 정성(精誠)을 기울이고 있다.
김여인(金女人)은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웃 어른들에게 친절하고 공손하며 마을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이웃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 일과 같이 돌보아 주는 인정을 베풀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절(寺)을 찾아가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생의 명복(冥福)을 빌고 어머니의 무병장수를 축원하는 불공을 올린다.
이러한 그녀의 지극한 효행(孝行)은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불교신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김음정(金陰貞) 여인(女人)은 입대한 약혼자의 뒤를 따라 여자의 몸으로 군에 입대하여 전장(戰場)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부상당해서 명예제대를 한 후에는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계시는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여 온갖 정성을 다해서 지극정성으로 봉양(奉養)하면서 60 평생을 희생과 봉사정신(奉仕精神)으로 일관하였다.
이러한 효행은 그 유례가 드물다고 마을 사람들이 한결 같이 칭찬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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