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김동해(金東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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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1990년 4월 20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선산군 옥성면
효부(孝婦) 김동해(金東海) 53세

김동해(金東海) 여사(女史)는 상주군 낙동면의 가난한 농가의 맏딸로 태어나서 18세 때 선산군 옥성면의 김봉원씨와 결혼하였다.

시댁도 역시 가난해서 결혼한지 3년째부터 남편은 행상길로 떠돌아 다녔고 지금까지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김여사(金女史)는 가정에서 시아버지 김백수(93세)씨와 시고모(媤姑母) 김봉순(90세)님을 모시고 농사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고 있다.

여자의 힘으로 농사일을 하고 가난한 가계를 꾸려나가는 것만 해도 벅차고 힘이 드는데 6년 전에 시아버지께서 뜻하지 않게 갑자기 쓰러져 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옮겨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중풍으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편하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시아버지(媤父)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는 등 정성껏 병구완(病救援)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3년 전부터 시고모님이 노환(老患)으로 치매현상(노망)이 생겨 용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시아버지, 시고모님의 식사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는 일과 의복과 이부자리의 세탁 등 장병(長病)에 무효자(無孝子)라는 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사람도 아닌 늙은 시아버지와 시고모님, 그것도 중풍환자에다가 치매환자의 시중을 든다는 것은 보통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자식의 기저귀도 빨기 싫어하는데 하는 일이 모두 불결한 것 뿐 인데도 김여사(金女史)는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내색도 하지 않으면서 수년을 한결같이 계속하고 있으면서도 자식된 도리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다고 하니 참으로 출중한 효부(孝婦)라 아니할 수 없다.

거기에다가 농사일과 자녀의 양육까지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터인데 이 모든 것을 김여사(金女史) 혼자가 감당하기에 문자 그대로 분골쇄신(粉骨碎身)이 아닌가.

김여사(金女史)의 지극한 효성(孝誠)의 공덕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금은 나름대로 생활도 윤택해졌고 장남을 결혼시켜 손녀도 보고 장남 역시 어머니의 효행(孝行)을 본 받아 효자(孝子)라는 칭찬이 자자하다.

핵가족시대가 되어 부모님이 건강해도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인데 90세가 넘는 고령의 병든 시아버지와 시고모님의 병구완(病救援)을 지극정성으로 해 온 김동해(金東海) 여사(女史)의 효행이야말로 이 시대 모든 여성들의 귀감이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