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심일기(沈一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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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1990년 4월 20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고령군 덕곡면
효부(孝婦) 심일기(沈一奇) 78세

심일기(沈一奇) 여사(女史)는 62년 전 16세 때에 김형복씨와 결혼했는데 시아버지는 고질병으로 병석에 누워 계시고 시어머니도 갑자기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고 눕게 되었다.

당시는 약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좋다는 약을 산과 들에서 구해다가 정성껏 병구완을 했으나 시아버지께는 1930년 9월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남편이 금광업(金鑛業)에 손을 대어 크게 실패하고 중풍으로 눕게 되어 부채는 늘어가고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갔다.

실의에 빠져 좌절(挫折)한 남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위독해졌을 때 심여사(沈女史)는 무명지(無名指)를 깨물어 선혈(鮮血)을 남편 입에 드리웠으나 별다른 효험이 없고 야속하게도 앞 못 보는 늙은 어머니와 어린 자녀 2남 1녀를 두고 1938년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死別)한 심여사(沈女史)는 여필종부(女必從夫)라 남편의 뒤를 따라 죽고 싶었으나 앞 못보는 시어머니와 어린 자식 3남매를 두고 차마 그럴 수도 없어 내 한 몸을 바치겠다고 굳게 각오하고 산과 들을 헤매면서 나물을 캐고 산채를 뜯어다가 나물죽으로 연명해갔다.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삯바느질하고 삯베를 짜고 농번기에는 날품팔이하고 겨울에는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다가 이십오리나 되는 시장에 내다 팔아서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어린 자식들의 호구(糊口)에 심혈을 기울였다.

1945년 1월에 앞 못 보는 시어머니는 남편과 자식을 앞서 보내고 한(恨) 많은 세상을 떠났다.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으나 1년 동안 아침 저녁으로 진지상을 차려놓고 조석전곡(朝夕奠哭) 정성껏 명복을 비는 심여사(沈女史)의 그 효성(孝誠)과 간절한 정성(精誠)을 본 마을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심여사(沈女史)의 갸륵한 효행을 기리어 1978년 김녕김씨(金寧金氏) 고령군(高靈郡) 종친회(宗親會)에서 효열상(孝烈賞)을 수여한 바도 있다.

이와 같이 심일기(沈一奇) 여사(女史)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78세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신만고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한번도 좌절(挫折)하지 않고 눈먼 시어머니의 봉양(奉養)과 2남 1녀를 훌륭하게 길러 성혼시키고 지금은 10명이 넘는 친외손(親外孫)을 두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심여사(沈女史)를 두고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면서 극구 칭찬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