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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선(朴辰仙)양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어머니를 여의고 집이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에 진학하지도 못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집안 살림을 살아오다가 1973년 15세 때에 새어머니가 들어오자 어려운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대구에 있는 방직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박(朴)양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집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근검절약(勤儉節約)해 알뜰하게 모은 돈을 매월 6만원씩 송금해서 생계(生計)를 돕고 동생들의 학비에 보태어 쓰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지난 88년에 아버지가 간경화증으로 병석에 눕게 되자 10년이나 같이 살던 새어머니가 가출해 버리고 집안을 돌볼 사람이 없어 박(朴)양은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병간호(病看護)를 했으나 1개월 후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4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난 박(朴)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동생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어 객지를 돌아다니기에 집에 도움을 줄 형편이 못되고 얼마 되지 않는 농사를 박(朴)양이 직접 지으면서 집안 살림을 맡아가야 했다.
90세가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노환(老患)으로 거동이 불편해져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기 때문에 진지 수발을 들어야 하고 대소변을 받아 내는 일과 약을 달여 드리고 의복과 이부자리를 깨끗이 세탁하는 등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여 극진히 모시었으나 1990년 1월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혼자 계시는 할머니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朴)양은 이웃에 사는 연세가 많은 어른들에게 친절하고 공손하며 특히 의지할 곳 없는 방정식(75세) 할머니가 정신박약(精神薄弱)으로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자기자신도 처지가 어려우면서 진지 수발도 들고 잔심부름도 해 드리는 등 경로 효친 사상(思想)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어렸을 때에는 병을 앓고 누워 계시던 어머니를 간병하고 성장해서는 아버지의 병구완(病救援)에 정성을 다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이웃 할머니까지 돌보며 시집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박(朴)양의 효행(孝行)을 기리어 1989년 3월 영천군수로부터 효행상(孝行賞)을 수상한 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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