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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성(張玉聖) 여사(女史)는 어릴 때부터 엄격한 가정에서 예절(禮節)을 닦으면서 자라나 25세때 신(申)씨 가문으로 출가 하였다.
장여사(張女史)는 시할머니(시조모(媤祖母)와 시어머니(媤母)를 모시고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단란하게 살았으나 1979년 뜻하지 않게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여사(張女史)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눈앞이 캄캄했으나 연로하신 시할머니(91세)와 시어머니(76세) 그리고 막내가 5세인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장여사(張女史)는 가난하고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열심히 살아왔는데 2년 전부터 시할머니가 노환(老患)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대소변을 받아 내어야만 하게 되었다.
장여사(張女史)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간병(看病)했으나 작년(89년)에 천수(天壽)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지금도 장여사(張女史)는 고질적인 천식과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어릴 때부터 부덕(婦德)을 닦아 효심이 지극하기 때문에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화목(和睦)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장여사(張女史)는 또 세 살 때 조실부모하고 고아가 된 조카(현재21세)를 데려다가 친자식 못지 않게 사랑으로 키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해에 불행하게도 시력장애(視力障碍)가 와서 경북대학교병원에서 두 달 동안 입원치료 했으나 완치되지 않아 현재는 집에서 치료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을 여자의 힘으로 꾸려가면서 조카를 교육시키고 치료까지 해주고 있는 장여사(張女史)야 말로 동기간(同氣間)의 우애(友愛)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희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30대 중반의 젊은 주부가 남편을 여의고 논밭도 없이 남의 셋집에서 살고 있으면서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계비와 자녀들의 학비 그리고 조카의 치료비까지 마련하기 위해 농사일을 날품팔이를 하고 산에 가서 버섯이나 약초(藥草)를 채취해서 30리 밖의 영덕읍에 내다 팔기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젊어서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연로하신 시할머니(시조모(媤祖母)와 시어머니(媤母)의 병구완을 하면서 조카를 데려다가 키우고 가난한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기 위해서 온갖 노동과 고생을 하면서도 구김살없이 언제나 명랑하고 화목(和睦)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장여사(張女史)의 효행(孝行)과 자애(慈愛)는 모든 여성(女性)들의 귀감(龜鑑)이 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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