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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길(權貞吉) 여사(女史)는 1945년 조국이 광복(光復)되던 해에 19세의 나이로 이웃 마을의 김태동씨와 결혼하여 화목(和睦)한 가정을 이루고 단란하게 살았다.
그런데 1970년 평소에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중풍으로 수족이 마비되어 거동이 불능해서 병상에 눕게 되었다.
권여사(權女史)는 식사를 떠 먹이는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아 내는 한편, 좋다는 약을 구해오고 신통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니면서 정성껏 병구원(病救援)을 했다.
남편이 눕게 되자 가세는 기울고 생계가 어렵게 되자 권여사(權女史)는 이웃집의 막노동이나 공사장의 날품팔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힘드는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지칠대로 지친 몸으로 남편의 병간호(病看護)를 정성껏 했으나 이러한 보람도 없이 5년 동안의 투병(鬪病) 끝에 남편은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친정 아버지가 중풍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으나 친정 동생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고 불효막심하게도 가출해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친정 어머니도 노환(老患)으로 거동이 불편하므로 권여사(權女史) 말고는 아무도 병구완할 사람이 없었다.
권여사(權女史)는 친정 아버지가 타계하실 때까지 3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에서 500m의 거리에 있는 친정에 식사를 가져다 드리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정성껏 병간호(病看護)를 했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친정 어머니가 또 중풍으로 눕게 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권여사(權女史)는 어머니를 자기집으로 모셔다가 정성을 다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오늘날까지 간병하고 있다.
권여사(權女史) 자신도 65세의 늙은 몸이라 중환자의 병간호를 하기가 어렵고 힘드는 일이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不德)한 소치로 돌리고 내색하지 않는다.
이렇게 20수년의 장구(長久)한 세월을 남편과 친정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병구완을 그것도 감당하기 아주 어려운 중풍환자를 전심전력(全心全力)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해 온 권여사(權女史)의 효행(孝行)을 이웃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의 모두가 출중(出衆)한 효녀(孝女)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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