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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자(朴海子) 여인(女人)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자랄 때부터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恭敬)해야 한다는 엄한 가정교육(家庭敎育)을 받고 성장(成長)하였다.
1981년 19세 때 결혼했는데 남편은 일정한 직업이 없어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어려운 가정이었다.
그런데 결혼 초부터 시아버지(媤父)께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앓고 있었으나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을만한 형편이 되지 못해서 병은 점점 짙어지고 몸은 점점 쇠약해져 마침내 자리에 눕게 되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갈 처지가 못되자 박여인(朴女人)은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민간요법으로 시아버지께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정성껏 병구완(病救援)을 하는 한편, 손발을 씻어 드리고 주물러 드리고 아침 저녁으로 시아버지의 병이 낫도록 해 달라고 정성들여 빌었다.
이러한 딱한 사정을 지켜 본 이웃 주민들도 동정을 금하지 못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시아버지의 병이 차츰 차도가 있어 마침내 완전하게 회춘(回春)하여 지금은 별로 불편함이 없이 정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박여인(朴女人)의 지극한 정성에 감복(感服)한 마을 사람들은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살렸다고 모두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박여인(朴女人)은 남편의 막노동으로 벌어오는 돈으로는 도저히 여섯 식구가 생활해 나갈 수가 없어서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참고 견디면서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가계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검소(儉素)한 생활로 알뜰하게 살림을 살고 한 푼이라도 저축하고 있다.
사치(奢侈)와 과소비 풍조가 만연하는 세상에서 박여인(朴女人)의 이와 같은 근검절약(勤儉節約) 정신은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박여인(朴女人)은 또 마을에 경조사(慶弔事)가 있을 때에는 몸을 사리지 않고 자진해서 도와주고 마을 부녀회 활동에도 앞장서서 묵묵히 공동기금(共同基金) 마련에 참여하여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아직도 20대의 젊은 주부가 일신의 안일을 꾀하지 않고 시아버지(媤父)의 지병(持病)을 회생시키고 사치(奢侈)와 허영을 멀리하고 불굴의 의지로 남편을 내조하여 가난한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면서 사회에 봉사(奉仕)하는 박여인(朴女人)의 장래에 많은 축복(祝福)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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