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조성래(趙聖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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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1990년 4월 20일)
효행상(孝行賞)
대구직할시 북구 조야동
효자(孝子) 조성래(趙聖來) 31세

조성래(趙聖來)씨는 아버지(조제윤)가 급성폐렴으로 1989년 2월부터 약 40여일간 대구의료원에 입원하게 되자 부인(당시 27세)을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집으로 보내어 병원에 가서 간병하게 하고 가사를 돌보게 하면서 자신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직장에 다녔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백만원이나 되는 거액의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자기가 타고 출퇴근하던 오토바이를 처분해서 병원비에 충당(充當)하고 자신은 도보로 출퇴근 하였다.

아버지의 병환이 위급해지자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에서 기거하면서 숙식을 같이 하고 병구완(病救援)을 했다.

불과 30세의 젊은이가 아버지에 대한 효성(孝誠)이 이렇게 지극하다는 것은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자(孝子)이다.

40여일간 병원에 입원하면서 1차 수술을 받고 병은 약간 차도가 있었으나 앞으로의 건강이 염려되어 퇴원한 뒤에는 조(趙)씨가 거주하던 집과 가제를 정리해서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조야동(助也洞)으로 합가하여 극도로 쇠약해진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서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정성껏 간호(看護)하였다.

조(趙)씨의 아버지(조제윤)가 건강할 때에는 날품팔이로 하루하루 벌어서 살아가면서도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해왔지만 병들고 난 뒤에는 노쇠(老衰)하고 병약하여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조(趙)씨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기아자동차 운전교습소 교습강사의 봉급으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약값을 충당하게 되었다.

조(趙)씨는 박봉으로 생계가 어려웠지만 근검절약 검소(儉素)한 생활을 하면서도 아버지의 병환에 좋다는 약은 어떻게 해서라도 구해다가 복용하도록 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과 정성(精誠)을 다하는 것이었다.

핵가족 시대에 모두가 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꺼리고 분가하려고 애를 쓰는데 조성래(趙聖來) 씨는 따로 나가 살다가도 자진해서 합가(合家)하고 박봉(薄俸)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면서 아버지의 입원비와 치료비 뿐만 아니라 약값을 마련하여 건강(健康)을 회복하도록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고 있으니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의 효성(孝誠)을 칭송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