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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경(崔美敬)양은 8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어머니가 중풍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를 하고 있는 효녀이다.
8세 때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신 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기신 빚더미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여 어느 정도 빚을 갚고 언니도 출가(出嫁)하였다.
그런데 최(崔)양이 16세의 여고시절에 어머니가 과로로 중풍에 걸려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었다.
거동불능에다가 언어장애까지 왔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최(崔)양 말고는 아무도 병간호를 할 사람이 없었다.
최(崔)양은 어머니의 식사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는 일, 빨래하고 밥짓는 그 밖의 모든 일을 맡아서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최(崔)양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병간호를 한 결과 6개월 후에는 말문을 닫고 잠만 자던 어머니가 조금씩 차도를 보이면서 회복의 기미가 보이자 최(崔)양은 더욱 힘을 내어 정성껏 병구완을 했다.
그간 이웃 사람들의 도움도 컸다.
최(崔)양이 혼자서 병간호를 하고 집안 살림을 꾸려가면서 학교(學校)를 다녀야 하니 최(崔)양이 학교에 가고 난 뒤엔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 사람들이 어머니를 돌봐 주기도 했다.
다행히 집이 자기집이라 남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지만 단칸 방에서 대소변을 수시로 받아 내어야 하니 어려움이 많아 1989년 봄에 빚을 내어서 집수리를 했다.
화장실을 옥내에 설치하여 몸을 끌면서도 혼자 용변을 볼 수 있도록 했으며 온수시설(溫水施設)도 해서 목욕을 자주 시켜드릴 수 있도록 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온갖 고생(苦生)을 하면서 자랐지만 항상 밝고 명랑하다.
최(崔)양은 꿈 많은 여고시절부터 장장 7년이란 긴 세월 동안 중풍으로 누워계시는 어머니의 병구완을 했으며 취직해서 직장에서 받는 얼마 안 되는 보수로 근검 절약하여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불평이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나이에 사치와 허영에 들떠 있지만 최(崔)양은 23세의 결혼정년기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병구완에 전념(專念)하고 있으니 최(崔)양의 효심(孝心)에 감복(感服)한 이웃 사람은 모두 입을 모아 효녀(孝女)라고 칭송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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