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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곤희(李坤熙) 여사(女史)는 16년 전 권병화씨와 결혼하여 9순(旬)이 넘은 시할아버지(媤祖父)와 62세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자녀를 거느린 가정의 주부로 효성(孝誠)이 지극하며 경로사상과 새마을 정신이 투철한 모범 주부이다.
남편 권병화씨는 조그마한 개인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나 워낙 박봉(薄俸)이라 남편이 벌어 오는 돈으로는 가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워서 이여사(李女史)는 하는 수 없이 시장에 나가 노점 행상(行商)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할아버지의 노환(老患)은 점점 짙어져서 3년 전부터는 병석(病席)에 눕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평소에도 조석으로 문안 드리고 했는데 병석에 눕게 되자 식사를 떠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손발을 깨끗이 씻어 드리고, 깨끗한 의복을 갈아 입혀 드리고, 이부자리를 자주 세탁하는 등 온갖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거기에 시어머니의 지병(持病)이 점점 악화되어 병원을 드나드는 일이 잦아졌다.
이여사(李女史)는 시할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하는 한편, 시장에도 나가 노점행상을 해야 했다.
시어머니의 병원비와 약값은 물론이고 시장에 나가지 않으면 당장 호구(糊口)에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여사(李女史)는 두 어른들의 병구완도 해야하고 시장에도 나가야 하기에 몸은 지칠대로 지쳤지마는 한마디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정성껏 병간호를 하고 억척스럽게 일을 했다.
사람이 역경(逆境)에 처하면 좌절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리어 꿋꿋하게 헤쳐 나가는 사람도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실망하거나 좌절(挫折)하지 않고 묵묵히 참고 견디며 용기를 내어 헤쳐 나갔다.
이러한 와중에도 포항시 대신동 부녀회원으로 일하면서 불우 이웃 돕기와 폐품(廢品)수집에 참여하여 사회봉사활동에 앞장서고 경로잔치 때에는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는 이여사(李女史)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의 봉사정신(奉仕精神)에 감복하여 칭찬이 자자하다.
연로하신 시할아버지와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정성껏 병구완을 하며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면서도 사회활동에 헌신적인 노력으로 봉사(奉仕)하는 이여사(李女史)의 효행(孝行)과 선행(善行)은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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