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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자(李幸子) 여사(女史)는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별다른 고생을 하지 않고 생활하다가 1975년 20세 때에 봉화군 물야면에서도 오지마을인 오전 1리에 사는 권춘재씨와 결혼하여 농촌생활을 하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모범주부이다.
요즘은 도시의 여성들이 농촌생활을 기피하여 아무도 농촌(農村)으로 시집가려 하지 않는데 이여사(李女史)는 오지 마을의 가난한 농부, 그것도 외아들이라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누이 3명과 함께 사는 가정으로 시집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면서 노력한 1년 후에는 농사일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80년 11월에 시아버지 권중건(당시 60세)씨가 중풍으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젊은 주부 이여사(李女史)는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시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방으로 수소문해서 유명한 의원을 찾아 다니면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끼니때마다 식사의 시중을 들고, 대소변을 받고 내고, 손발을 씻어 드리고, 옷과 이부자리를 세탁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극진히 병구완을 11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여사(李女史)의 효행을 지켜본 주위의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새댁이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이여사(李女史)는 또 시어머니 박금예(66세)여사를 극진히 모시고 있다.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항상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혀 드리고 동네 노인들이 놀러 오시면 공손하게 접대하는 경로(敬老) 효친사상을 실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누이 3명도 학교 교육을 마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고 모두 출가(出嫁)시켰으니 형제간의 우애도 돈독하다.
그리고 마을 부녀회(婦女會)의 부회장일을 맡아서 마을의 공동작업에도 적극 참여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활동(奉仕活動)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시에서 자라난 현대여성이 남들이 기피하는 농촌으로 출가하여 힘드는 농사일을 내조(內助)하면서 중풍으로 거동 불능(不能)인 시아버지의 병간호(病看護)를 11년 동안이나 해 오면서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동기간에 우애 있게 지내고 마을 일에도 적극 참여하는 그의 갸륵한 효행(孝行) 정신은 모든 젊은 여성들이 본 받아야 할 살아있는 참 교본(敎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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