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복순(李福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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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1991년 4월 25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금릉군 개녕면
효부(孝婦) 이복순(李福順) 55세

이복순(李福順) 여사(女史)는 1962년에 윤씨 가문으로 출가(出嫁)하여 시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가계(家計)를 꾸려가면서 2남 1녀를 두고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0년에 남편이 불치(不治)의 병에 걸렸는데 치료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해 보았으나 얼마 되지 않는 재산만 탕진(蕩盡)하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남편을 여읜 이여사(李女史)는 눈앞이 캄캄하여 한동안 실의에 빠졌으나 시어머니와 자식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굳게 결심하고 농번기(農繁期)에는 날품팔이를 하고 농한기에는 부업(홀치기)를 해서 15년 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자녀들을 중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켜 사회에 진출시켰다.

남편과 사별하고 15년 뒤인 1985년에 경기도에 계시던 시숙부(현재 76세)님께서 중풍이 들었는데도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자 이를 불쌍히 여긴 이여사(李女史)가 자청하여 집으로 모시고 와서 병구완을 하고 있다.

집에는 시어머니(82세)가 노환으로 누워 계시는데 이여사(李女史)는 두 어른을 간병하게 되었다.

날마다 끼니때에는 식사 시중을 들어야 하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옷이며 이부자리를 깨끗이 빨래하는 등 온갖 수발을 들고 있다.

친부모도 아닌 시숙부를 이렇게 정성껏 간호한다는 것은 지극한 효성(孝誠)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여사(李女史)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내색하지 않는다.

참으로 출중한 효부라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부산(釜山)에서 살던 조카 2명 윤양숙(19세), 윤영옥(15세)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갈 곳이 없게 되자 이여사(李女史)가 12년 전(당시 7세, 3세)에 집으로 데리고 와서 친자식처럼 키워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위대한 인간애의 정신(精神)을 실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부녀회장을 맡아서 구판장 운영으로 얻은 이익금(利益金)의 일부로 경로잔치를 열고 효도관광을 시키는 등 경로정신도 실천하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결혼하고 8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20년이 넘도록 수절(守節)하면서 연로하신 시어머니와 중풍으로 와병(臥病)중인 시숙부의 병간호를 하면서 의지할 곳 없는 조카들을 데려다가 친자식처럼 양육(養育)하고 마을의 어른들을 섬기는 참으로 희생과 봉사정신, 뛰어난 지성(至誠)스러운 효부(孝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