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순선(李順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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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1991년 4월 25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성주군 대가면
효부(孝婦) 이순선(李順先) 40세

이순선(李順先) 여사(女史)는 농촌에서 어려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현모양처의 부덕을 닦아 1973년 22세 때에 이성규씨와 결혼하였다.

결혼 당시 시댁은 매우 가난했고 거기에다가 남편은 건강까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여사(李女史)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막노동을 시작했다.

갓 시집온 새댁이 남의 집 날품팔이를 하고 막노동을 하는 것을 보고 이웃 사람들은 장차 그 집이 흥할 것이라고 칭찬을 했다.

이여사(李女史)는 또 성주(星州)가 특용작물인 참외의 주산지임을 감안해서 참외재배에 진력하여 저축(貯蓄)도 하게 되었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이여사(李女史)의 가정은 화목하고 단란하였다.

그런데 1984년에 시동생이 갑자기 사망하였다.

졸지에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께서 크게 충격을 받으시고 뇌출혈을 일으켜 전신마비(全身麻痺)의 중태에 빠지게 되었다.

부랴 부랴 종합병원에 입원해서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병은 완치 되었으나 병원비 400여만원의 빚을 지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둘째 며느리인데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또 많은 빚을 졌지마는 조금도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원 후 1년까지는 건강하시던 시어머니가 5년 전부터 병이 재발하여 이제는 반신불수가 되며 거동하지 못하고 병석에 눕게 되었다.

이여사(李女史)는 백방으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식사의 시중은 물론이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손발을 씻어 드리고, 의복을 깨끗이 갈아 입히고, 이부자리의 세탁 등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극진히 병간호를 하고 있다.

이여사(李女史)는 병원에서 1년 동안 그리고 몸져 누운지 5년간 그러니까 6년 동안을 한결같이 병간호를 하면서도 자식된 도리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따름이라고 하면서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언제나 겸손(謙遜)하다.

지금은 논 1천 2백평을 마련하여 농촌의 중류가정을 이루고 자녀교육(子女敎育)에도 열성적인 어머니로서 뒷바라지를 다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여사(李女史)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결혼 초부터 막노동을 시작했고, 남편을 도와 특용작물을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고 둘째 며느리이면서도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지극한 정성으로 하고 있는 효부요 어진 아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