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나정금(羅正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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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1991년 4월 25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고령군 다산면
효부(孝婦) 나정금(羅正今) 52세

나정금(羅正今) 여사(女史)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의지가 굳었으며 부모님의 엄격한 교훈(敎訓)을 받고 자라나 예절 바른 부덕을 닦아서 1958년 19세 때 민삼수(閔三守)씨와 결혼하였다.

결혼 당시 시댁에는 천수답 500평과 소작농 몇 마지기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1965년에 졸지에 사람이 죽고 집이 폐할 처지에 높인 숙부(叔父) 앞으로 남편은 입양(入養)하게 되었다.

당시 양시아버지의 전 재산은 임야개간지 몇 백평 뿐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살 길을 찾아서 이웃 마을에 있는 양조장에 취직하게 되었다.

1966년 봄에 나여사(羅女史)는 양시아버지를 모시고 양조장 집으로 합가(合家)하였다.

그리하여 평소에 술을 즐기시는 양시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고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서 마을 노인들을 초청해서 자주 술과 식사를 대접하였다.

애주가이신 양시아버지께서는 날마다 즐겨 술을 마셨는데 1975년부터는 불행히도 지병이 악화되어 병고(病苦)가 심해지고 말았다.

이에 나여사(羅女史)는 만나는 사람마다 수소문해서 좋다는 약을 구해오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고 3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병구완을 했는데도 백약이 무효로 1978년 5월에 향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여사(羅女史)는 양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빈소에 항상 향화(香火)를 끊지 않고 지성으로 복상(服喪)하였다.

또 어느해 모내기 철에 이웃에서 모내기를 하다가 폭우를 만나게 되어 갑자기 강물이 불어 건너갈 수가 없어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모두 집으로 데려다가 방에 불을 지피고 한기(寒氣)를 면하게 하는 한편, 옷가지를 꺼내어 입히고 죽을 쑤어서 허기를 면하게 해 주었다.

덕(德)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했는데 나여사(羅女史)의 이러한 이웃을 아끼고 도우는 정신과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숭고(崇高)한 인간애(人間愛)의 정신을 우리는 높이 평가해야만 할 것이다.

3남 3녀의 자녀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 나가 생활하고 있으나 어머니의 교훈을 잘 지키고 나여사(羅女史)의 정성 어린 효행(孝行)과 후한 인심이 헛되지 않아 지금은 도정공장을 운영하면서 주택도 마련했으니 그의 앞날에 만복이 더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