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정기분(鄭己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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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1991년 4월 25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청도군 각남면
효부(孝婦) 정기분(鄭己分) 38세

정기분(鄭己分) 여사(女史)는 유교적 전통의식이 강한 가문에서 자라면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통해서 현모양처의 미덕(美德)을 갖추어 10년 전에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정여사(鄭女史)는 1982년에 빈곤을 탈피하려고 부산으로 이주하여 남편과 함께 생선시장에 경매(競賣)하는 일을 보조하기도 하고 생선소매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매일 밤 늦은 시각인데에도 반드시 부모님께 문안(問安)드리고 이튿날 할 일의 준비를 마치고 나면 자정이 넘는 것이 예사이지만 꼭 시부모님의 불편한 점이 없는가를 챙겨서 시중을 들어 드리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빈곤(貧困)을 탈피하기는커녕 도리어 빚만 늘어가는 형편이라서 84년 이른 봄에 고향(故鄕)으로 돌아와서 농사일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 해(84년) 가을에 시어머니께서 고혈압 증세가 악화되어 병구완에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정여사(鄭女史)는 어떻게 해서라도 시어머니의 병을 회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모아 유명한 의원이나 병원을 두루 찾아 다니면서 진료를 받았으나 워낙 병이 짙어져서 별다른 효험(效驗)을 보지 못하고 지금은 집에서 약물치료를 하고 있으나 별로 차도가 없다.

그러나 정여사(鄭女史)는 낙망(落望)하지 않고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어떻게 해서라도 낫게 하겠다고 직접 산에 가서 약초를 캐어오기도 하고 민간요법으로 좋다는 약을 구해 드리고 손발을 깨끗이 씻어 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병원비와 약값으로 빚은 늘어나고 살림살이는 엉망이 되어 남편은 모든 일에 자신감(自信感)을 잃고 실의에 빠져 일손을 놓고 있으나 정여사(鄭女史)는 이러한 남편을 위로 하고 격려하면서 조금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어코 시어머니의 건강을 회복 시키겠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정여사(鄭女史)를 칭찬해 마지 않는다.

경로 효친사상이 날로 퇴폐해가고 이기주의와 편의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30대의 젊은 주부가 헌신적(獻身的)으로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도 자식된 도리로 당연하다고 말하는 정여사(鄭女史)의 효행은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