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김형일(金炯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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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1991년 4월 25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의성군 안계면
효자(孝子) 김형일(金炯一) 45세

김형일(金炯一)씨는 1946년에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進學)을 포기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 왔다.

우리의 전통(傳統) 풍습(風習)으로는 장남이 부모님을 모시도록 되어 있으나 형이 군에 입대하였기 때문에 김(金)씨가 일찍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는데 1961년에는 누님이 출가(出嫁)하고 1967년 해군에서 복무하던 형이 갑작스레 전사(戰死)했기에 김(金)씨가 장남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김(金)씨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기가 너무 힘이 들어 1969년에 김순옥 여사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두 사람이 합심해서 더욱 극진히 부모님을 시봉하였다.

그런데, 1986년 8월에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넘어졌다.

9월까지 1개월 동안 경대의과대학 부속병원에 입원 가료했으나 수술을 못 할만큼 중환(重患)으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회복불능(回復不能)이라는 진단결과 하는 수 없이 퇴원했다.

이때부터 김(金)씨 부부는 번갈아 가면서 식사의 시중과 대소변을 받아 내는 일이며 손발을 씻어 드리고 의복과 이부자리를 깨끗이 세탁하는 등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간병(看病)하였다.

작년(90년)에는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던 서울에서 사는 동생마저 사망(死亡)했고 자녀들이 도시에 나가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그 뒷바라지를 위해서 부인은 자주 집을 비우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병구완을 해서 효부라는 칭찬을 받는 일은 많아도 아들이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어 효자라는 칭찬을 받기가 어려운데 김(金)씨는 5년을 하루같이 불평(不平) 한마디 하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고 있는 효자이다.

김(金)씨는 어머니의 무료(無聊)함을 위로(慰勞)하기 위해서 음식을 장만하여 동네 노인들을 초청해서 대접하고 함께 즐겁게 노시도록 배려(配慮)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성실(誠實)하게 살아온 김형일(金炯一)씨는 형이 군에서 전사하고부터는 장남이 하는 일을 맡아 더욱 극진히 모셔 오다가 어머니가 중풍(中風)으로 자리에 눕자 어머니의 손발이 되어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여 병구완을 하고 있으니 출중(出衆)한 효행(孝行)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