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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봉선(黃鳳仙) 여사(女史)는 20년 전에 남편이 가출(家出)한 뒤 연로(年老)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3남 1녀를 양육(養育)하면서 성실하게 살아 온 모범주부이다.
남편은 20여년 전에 생활고(生活苦)를 견디다 못해 가족들을 남겨 두고 혼자 서울로 갔는데 집을 나간 후로는 종무소식(終務消食)이더니 작년(1990년) 9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남편이 가출한 후 황여사(黃女史)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자녀들이 성장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농번기(農繁期)에는 농사일을 품팔이를 하고 농한기(農閑期)에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가난한 살림살이를 꾸려 나왔다.
아들이 집을 나간 뒤 마음이 몹시 상한 시어머니께서 자주 속병을 앓다가 10여년 전부터는 아주 병석에 눕게 되었다.
황여사(黃女史)는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면서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야 했다.
식사의 시중을 들기도 하고 속병에 좋다는 약(藥)을 구해 드리고 하면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극진히 모시고 있다.
그런데 90세가 넘으신 시어머니의 속병은 점점 악화되어 눈이 멀어져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황여사(黃女史)는 끼니 때마다 식사 시중을 드는 것은 물론이고 대소변을 받아 내는 일과 매일 따뜻한 물로 세수 해 드리고, 자주 목욕을 시켜 드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고, 가끔씩 시어머니를 모시고 마을 나들이를 하면서 친구분들을 만나 무료(無聊)함을 달래도록 하는 등 지극한 정성으로 시어머니의 손발이 되어 병구완을 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하면 자기 몸을 아름답고 예쁘게 가꿀 것인가 하는 연구와 어떻게 하면 편리(便利)하게 힘 안 들이고 살 수 있는가 하는 연구 뿐인데 황여사(黃女史)는 자기 모든 것을 희생(犧牲)하면서 연로하신 시어머니의 병간호(病看護)와 3남 1녀의 자녀를 훌륭하게 길러내었으니 참으로 장(壯)한 어머니라 하겠다.
이와 같이 20여년 전에 남편이 집을 나간 뒤 오늘날까지 여자의 힘으로 날품팔이와 막노동으로 가계를 꾸려가면서 연로하시고 눈먼 시어머니를 봉양(奉養)하면서 자녀들을 양육하면서도 한마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역경을 견디어 내는 황여사(黃女史)의 효행(孝行)은 경로 효친사상이 퇴폐해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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