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이후자(李後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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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1992년 4월 24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영풍군 평은면
효부(孝婦) 이후자(李後子) 34세

이후자(李後子)씨는 어릴 때부터 엄격(嚴格)한 가정에서 효도와 경로정신(敬老精神)을 몸에 익혀 1981년 23세 때에 김경락씨와 결혼하였다.

결혼 전에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이여인(李女人)이 결혼하고 보니 남편 김경락씨와 시누이 두 사람이 모두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다.

거기에다가 시아버지는 매일 술로써 세월을 보내고 시어머니는 구박만 주는 꺼져가는 등불처럼 어두운 집안이었다.

이여인(李女人)은 이럴수록 용기(勇氣)를 내어야 한다고 단단히 각오하고 모든 일을 헌신적(獻身的)으로 해 나갔다.

앞 못 보는 남편과 시누이 두 사람은 이여인(李女人)이 아니면 화장실(化粧室) 출입도 어렵기 때문에 손발이 되어 주어야 하고 농사일을 혼자서 도맡아 해야할 뿐만 아니라 땔감도 다 이여인(李女人)이 손수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농사를 지어서 얻은 소득만으로는 양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갖은 날품팔이를 해야하니 몸이 지칠대로 지쳤지마는 이여인(李女人)은 그것을 하늘이 내린 운명(運命)으로 받아 들이고 불평하거나 좌절(挫折)하지 않는다.

여자 혼자의 힘으로 고된 농사일과 남의 집 품팔이를 해 가면서 시부모님을 봉양(奉養)하고 앞 못 보는 장남인 남편과 두 시누이의 뒷바라지를 10년 동안이나 해 오고 있으니 참으로 장하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나 시부모님께 극진히 효도(孝道)함으로써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시아버지의 술버릇이 좋아졌고 시어머니(媤母)의 구박이 줄어 들었으며 가정에 차츰 평화(平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여인(李女人)은 남편에게 권유해서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하느님의 사랑 속에 축복(祝福)받은 가정이 되어 가난하고 불구자들이 모인 가정이지만 정신적(精神的)으로는 풍요(豊饒)로움이 가득차게 되었고, 거택보호자(居宅保護者)로 지정되어 보호(保護)를 받고 슬하에 2남 1녀를 두어 잘 자라고 있다.

이와 같이 이후자씨는 결혼 초부터 앞 못 보는 남편과 장남인 시누이 두 사람의 시중을 들고 온갖 뒷바라지를 하면서 주벽(酒癖)이 심한 시아버지와 구박이 심한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농사일과 품팔이를 해 가면서 10년 동안 한결같이 효도(孝道)하고 있으며 깊은 신앙심으로 항상 기도하고 헌신적(獻身的)으로 봉사(奉仕)하고 있으니 이러한 그의 숭고(崇高)한 효행(孝行)은 영풍군(榮豊郡)의 자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