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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순(田龍順) 여사(女史)는 1946년 17세 때에 성태식(成台植)씨와 결혼했으나 그 당시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는 가난한 농가의 10식구의 맏며느리로 시집 생활을 시작했다.
전여사(田女史)는 결혼 초부터 신체가 부자유한 시부모님을 조석(朝夕)으로 문안드리고 워낙 가난해서 시부모(媤父母)님에게는 밥을 지어 드리고 다른 가족들은 나물죽으로 연명(延命)해갔다.
그렇게 지극한 정성(精誠)으로 시부모님을 모셔왔는데도 1972년에 시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시자 예(禮)를 갖추어 소대상(小大祥)을 치루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전여사(田女史)는 거동이 불편하신 시아버지를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드리고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 입혀 드리고 시어머니께 못다한 효도(孝道)를 성심성의(聖心誠意)껏 해 왔으나 3년 후에 시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전여사(田女史)는 애통(哀痛)함을 금치 못하고 예로서 3년상을 치루었다.
전여사(田女史)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서 더욱 열심히 농사일을 하고 날품팔이 해 가면서 근검절약(勤儉節約)하고 있는데 이웃에서 살던 시숙(媤叔)모님이 슬하에 6녀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전여사(田女史)는 시숙부님을 봉양(奉養)하고 질녀들을 돌보아주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찢어지게 가난한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시숙부(媤叔父)님을 모시고 시사촌들의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으나 전여사(田女史)는 한마디 불평이나 짜증을 내지 않고 시아버지를 모시듯이 하고 친자식을 기르듯이 모든 뒷바라지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칭찬해 마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전여사(田女史)는 마을의 길흉(吉凶)사에 앞장 서서 일하고 이웃에 사는 불우한 노인(老人)을 수시로 찾아가서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 주고 있다,.
작년 가을에도 인근에 사는 불우노인 3명의 집에 가서 김장을 해 드리기도 했다.
이제는 6명의 질녀와 친 자녀를 구별 없이 길러 취직시키고 결혼(結婚)시켰으며 85세의 고령인 시숙부(媤叔父)님은 2년 전부터 중풍으로 거동이 부자유스럽지만 며느리가 아닌 질부(姪婦)로서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모셨듯이 지극한 정성으로 병구완(病救援)을 하고 있다.
전여사(田女史)는 가난한 집의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시동생과 자녀들 그리고 시사촌들까지 뒷바라지해서 사회인으로 진출시키고 시숙부님의 병간호(病看護)에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으니 전형적(典型的)인 한국의 여인상(女人像)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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