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김경자(金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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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1992년 4월 24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영양군 석보면
효부(孝婦) 김경자(金慶子) 32세

김경자(金慶子) 여인(女人)은 6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농사철에 일손이 바쁠 때에는 동생들을 돌봐 주면서 자라서 1985년 25세 때에 김기수씨와 결혼(結婚)하였다.

김여인(金女人)이 결혼했을 당시 시댁(媤宅)은 몇 해전에 사망한 손위 시숙(媤叔)의 아들(3세)과 칠순이 넘은 시부님이 계셨고 재산이라고는 논밭이 800평 정도 밖에 안 되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었으나 시부모님을 정성(精誠)껏 모시고 어린 조카를 친자식처럼 양육(養育)하였다.

그런데 3년 전부터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 않으시던 시부(媤父)님께서 중풍으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김여인(金女人)은 자랄 때에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많이 해 왔지마는 이제는 시아버님의 병구완(病救援)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김여인(金女人)은 와병(臥病)중인 시아버님의 식사의 시중과 대소변의 처리, 목욕과 빨래 등 시아버님의 손발이 되어 모든 수발을 들면서도 조카와 두 아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일일이 보살펴주고 챙겨 주어야 하니까 마음이 바쁘고 몸이 지쳤으나 한번도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지극(至極)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하고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사랑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1년 6월에 하늘같이 믿고 살아오던 남편이 뇌출혈(腦出血)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김여인(金女人)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슬픔으로 한동안 실신상태에 있었으나 초종장례(初終葬禮)를 마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애통해하고 있을 수만 없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능한 시아버님과 아직도 어린 조카와 자식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꿋꿋하게 희망(希望)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른 한 살의 청춘과부(靑春寡婦)가 혼자의 힘으로 1,400평이나 되는 농사를 짓는 한편, 중풍으로 누워계시는 시아버님이 병수발과 어린 조카와 자식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1년에 8회나 되는 봉제사(奉祭祀)를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성한 부모도 모시지 않으려고 제 마음대로 안되면 돌아서는데 김여인(金女人)은 꽃다운 나이에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병든 시아버님을 모시고 어린 자식을 기르면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모든 사람의 귀감(龜鑑)이 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