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김명수(金明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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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1992년 4월 24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경산시 정평동
효자(孝子) 김명수(金明秀) 49세

김명수(金明秀)씨는 부유한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청소년기에 부모님을 여의고 자기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박옥수 여사(女史)(독거노인 74세)를 양어머니로 모시고 극진히 효도(孝道)하는 효자(孝子)이다.

김명수(金明秀)씨의 부모는 서울에서 건설업을 했는데 경험부족(經驗不足)으로 연달아 사업에 실패하자 모든 재산을 탕진(蕩盡)하고 화병(火病)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명수(金明秀)씨 집에서 가정부(家政婦)로 일하던 박옥숙 여사(女史)는 가난한 농부와 결혼했으나 남부럽지 않게 단란한 가정을 꾸려오다가 갑자기 남편이 사망(死亡)하자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가 없어 김(金)씨 집에 가정부로 일했던 것이다.

박옥숙 여사(女史)는 집주인이 사망하고 집안이 망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서울 시립양로원에 입소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김명수(金明秀)씨는 부유하던 가정이 졸지에 망하고 부모님과 사별하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곳 저곳으로 전전하다가 1976년 5월에 지난날 가정부로 일하던 박여사(朴女史)가 슬하에 자식이 없고 연로해서 양로원(養老院)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집으로 모셔다가 양어머니로 삼고 친어머니 못지 않게 조석(朝夕)으로 문안 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고 온갖 정성(精誠)을 다하여 극진히 봉양(奉養)하고 있는데 지난 90년 4월에 양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김명수(金明秀)씨는 중풍에 좋다는 약을 구하러 서울, 부산, 마산, 전주 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밭 30평을 팔아서 명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렸으나 차도가 없고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어 거동이 불능해졌다.

이에 김명수(金明秀)씨는 식사의 시중은 물론이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본인이 직접 온갖 정성을 다 바쳐 병구완(病救援)을 하는 한편, 부인에게 속옷과 요이부자리를 깨끗이 세탁하도록 하고 10km나 떨어진 곳에서 고물장사를 하면서도 수시로 집으로 달려와서 살펴보고 뒷바라지를 해 드리는 지극한 정성으로 간병(看病)하고 있다.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이 땅에 떨어진 오늘날 나를 낳아주신 친어머니도 모시지 않으려 하는 시대에 옛날에 넉넉할 때에 가정부로 일하던 분을 모셔다가 양어머니로 삼고 극진히 봉양하다가 중풍으로 거동이 불능하자 손발이 되어 온갖 어려운 시중을 들면서 간병하는 김명수(金明秀)씨의 효행(孝行)과 인간애(人間愛)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