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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李敬林) 여사(女史)는 20여년 전에 조시원(曺時元)씨와 결혼했는데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두분과 시동생 3형제 그리고 2남 1녀의 자녀 등 11명의 대가족에다가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하면서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는 가정의 주부이다.
이여사(李女史)가 둘째 아들을 낳고 두칠도 못되어 시부(媤父)님께서 갑자기 고혈압(高血壓)으로 쓰러지게 되었다.
가세가 넉넉하지 못해서 병원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 약국의 약과 2개월 가량 손수레에 태워 침을 맞으러 다니고 식이요법(食餌療法)으로 가료했더니 차도가 조금 있었으나 노환(老患)이 겹쳐서 9년동안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이 9년이지 오랜 세월 동안 병간호(病看護)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여사(李女史)는 자신이 부덕(不德)한 소치(所致)로 집이 가난해서 입원치료를 받지 못한 탓이라고 한 없이 애통(哀痛)해 하였다.
시부(媤父)께서 돌아가신 후 두 시모(媤母)님을 모시고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살아오던 중, 이번에는 시모님이 중풍으로 쓰러졌다.
이여사(李女史)는 돌아가신 시부(媤父)에게 다 하지 못한 효도(孝道)를 생각하면서 그 동안 얼마간의 모아 둔 돈으로 시모님을 문경병원에 입원시켜 병을 치료하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수와 머리의 손질,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목욕을 시켜 드리고, 밤낮으로 병원을 떠나지 않고 병구완에 몰두하였더니 입원한지 두 달만에 기적적(奇蹟的)으로 의식(意識)을 회복하고 수족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지금은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효부(孝婦)를 만나서 기적적으로 회생(回生)했다고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모자라는 병원비를 동분서주(東奔西走)하여 마련하고 퇴원했는데 퇴원(退院)하는 날 운동 기구를 사서 집에서 물리치료를 계속하고 있으나 시모(媤母)님의 연세가 93세라 이미 기억력도 줄고 거동도 불편해졌다.
그러나 이여사(李女史)는 더욱 더 있는 힘을 다해서 정성껏 병간호(病看護)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여사(李女史)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한번도 불평하거나 내색하지 않고 시부모님의 병간호(病看護)를 9년 동안이나 하고 연달아 시모(媤母)님의 병구완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맏며느리로서 경로효친사상(敬老孝親思想)이 쇠퇴해가는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부(孝婦)이며 모든 이의 귀감이 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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