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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순(金錦順) 여사(女史)는 5녀 중 막내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 20세 때 조현호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결혼 당시 구미시는 신흥공업도시로 공단조성(工團造成) 등 제반시설을 확충(擴充)하는 관계로 도시기반시설이 제대로 조성되지 못하고 도시와 농촌이 혼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여사(金女史)의 시댁은 농사를 전업(專業)으로 하는 농가로서 농사일을 해보지 않는 김여사(金女史)로서는 이런 농촌 생활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김여사(金女史)의 남편 조현호씨는 둘째 아들이었으나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다.
김여사(金女史)는 시부모(媤父母)님을 모시면서 농사일을 해야 하니 더욱 힘겨웠으나 차츰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90년 여름에 시어머니가 낙상(落傷)하여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김여사(金女史)는 밤낮으로 병원에서 병간호(病看護)를 정성껏 했으며 퇴원 후에도 물리치료를 받으러 6개월 동안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통원치료(通院治療)를 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완치(完治)되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모두 며느리의 지극(至極)한 정성 때문에 살아났다고 입을 모아 칭찬한다.
김여사(金女史)는 자신이 효행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녀들에게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효도(孝道)하도록 하고 있다.
연로하신 시부님(81세), 시모님(80세)을 모시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석(朝夕)으로 문안 드리고 행여나 불편한 데가 없는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좋아하시는 음식을 장만해 드려야 하고 항상 마음을 즐겁게 해 드려야 한다.
김여사(金女史)는 이웃 노인들이 놀러 오시면 공손하고 친절하게 맞아 들여 음식을 대접하고 시부모님과 즐겁게 노시도록 배려한다.
또 김여사(金女史)는 광평 1동 부녀회장을 맡아서 사회봉사(社會奉仕)활동에도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폐품수집으로 생긴 이익금과 따로 노인들을 위해서 모은 기금(基金)으로 노인정(老人亭)과 불우노인들을 방문(訪問)하여 빨래와 청소를 해 드리고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김여사(金女史)는 맏이가 아니고 둘째이면서도 시부모님을 극진히 봉양(奉養)하고 언제나 마을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서 온갖 노력과 정성(精誠)을 다하고 있으니 지역주민 모두가 효부(孝婦)라고 칭송(稱頌)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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